[매일춘추] 전시장에서 떠나는 여행 - 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퇴근을 하기도 전에 어둠이 드리워진 것을 보니 가을인가 보다. 2020년의 봄과 여름은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것 같다. 올해가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어릴 적부터 혼자 비행기를 타고 먼 곳에 있는 친척 집을 다녀오기도 하고, 한때 직업으로 꿈꿀 만큼 여행이 주는 설렘과 행복은 특별했다. 지금은 큐레이터로서 박물관 및 미술관 답사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온전한 휴식으로의 여행, 스포츠 취미 활동의 여행 등 여행의 목적과 즐기는 방식은 때에 따라 다양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필자를 대구에만 머물게 만들었다. 대신 전시장에서 떠나는 간접 여행을 선물해 주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마주치게 되는 장면 혹은 인기척 없는 고요한 장소, 해변이나 시장에서나 볼 법한 각양각색의 파라솔이 드리운 배경 등 그 장소의 주인공이 되어 여행을 떠나본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화면 중앙과 우측에 우산을 쓴 사람들이 밤거리를 걷고 있었고, 후경에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연상케 하는 건물과 푸른 나무들이 장식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작품을 보고 마치 우산을 쓴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과일이 묘사된 작품을 통해서는 자두밭이 있는 외가댁이 떠올랐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자두를 수확하던 어린 시절로 추억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이 묘사된 화면을 통해서는 눈을 뽀드득 밟는 것처럼 그 장소에 대한 현실감이 느껴졌고, 제주의 모습이 드리운 풍경화를 통해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친한 언니가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함께 보낸 추억이 그리웠지만 재회의 기다림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서양 미술사 책을 꺼내어 보면서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일주를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예술 작품을 통한 간접 여행이었던 것이다. 특히 인물화를 접했을 때는 등장하는 인물에 따라 가족, 친구와 함께 보냈던 추억 여행을 다시금 떠올려 보기도 했다. 이처럼 전시장에서 만나는 인물화와 정물화 그리고 풍경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세계 일주가 가능하고 그곳으로의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바꾼 여행 문화로 '언택트 여행'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접촉을 피한다는 의미로 로드 트립, 차박 캠핑, 호캉스 등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전하고 폭넓은 전시장에서 보내는 여행도 꽤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 바캉스를 떠나지 못했던 대구 시민들이 대프리카 조형물에서 휴양지를 간접적으로 떠났던 여행처럼 전시장에서 작품을 통해 떠나보는 여행은 아주 색다른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남은 여행을 전시장에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