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공기로 만든 폭탄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질소는 생명체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필수 물질이다. 공기 중 78%를 차지할 만큼 흔하지만 기체이기에 땅에 잘 스며들지 않는다. 질소를 얻기 위해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 전략을 쓰는 콩과(科) 식물을 제외하면 모든 식물은 유기화합물을 통해 질소를 얻는다.

이 과정에 등장하는 '일등 공신'이 있다. 번개다. 번개가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전기는 공기 중의 질소가 땅에 녹아들 수 있게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번개가 많이 칠수록 환원되는 질소가 많아져 땅이 비옥해진다. 번개가 없으면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으니 자연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

질소는 비료의 주성분이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1868~1934)가 공기 중의 질소를 농축한 뒤 암모니아를 더하는 방법으로 질산암모늄 비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의 발명 덕분에 농업 생산성이 현격히 높아지면서 1900년대에 16억에 불과하던 인류는 1세기 만에 70억으로 불어났다.

질소를 이용해 프리츠 하버는 인류에게 빵을 선사했지만 폭탄도 함께 안겨줬다. 질산암모늄은 폭발물 원료로도 쓰인다. 상당수 화약은 질산암모늄에 경유 등 첨가물을 섞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TNT의 폭발력을 1이라고 치면 질산암모늄의 폭발력은 0.42에 해당된다.

소홀히 관리되는 질산암모늄만큼 위험한 물질도 없다. 1947년 미국 남부 항구도시 텍사스시티에서는 질산암모늄을 실은 화물선 화재 폭발 사고로 581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지난 4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대참사도 질산암모늄 폭발 사고다. 창고에 보관된 2천750t의 질산암모늄이 터져 100여 명이 숨지고 도시 절반이 피해를 입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5분의 1 수준 폭발이라고 하니 소형 핵탄두가 터진 거나 마찬가지다. 요르단 관측소는 이번 폭발이 리히터 규모 4.5 지진과 맞먹는다고 발표했다.

베이루트 폭발 참사도 인재(人災)인 듯하다. 알자지라 방송은 레바논 정부 고위 관료들이 6년 전부터 항구에 보관된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 정부가 베이루트 항구 보안 및 물류 보관창고 관련 공무원 연루설을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인간의 방심(放心)이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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