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대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학’도시다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휴가를 맞아 부모님을 뵈러 온 동생의 손에 두툼한 서류 뭉치가 들려져 있었다. 휴가까지 가지고 온 서류가 궁금해 들여다보니 얼마 남지 않은 조카의 대학 수시모집 관련 서류였다. 평소엔 직장 일로 바쁘니 휴가기간 동안 자식의 서류를 읽어 봐주기로 약속하고 가져온 것이다. 덜컥 약속은 했지만, 달랑 두 쪽짜리 기록을 가지고 졸업한 세대인 동생에게 수십 장에 달하는 생활기록부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아들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어설픈 반성을 들으며, 대학 입시에 관한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기생충'에서 동생 기정은 사수생인 오빠 기우에게 연세대 재학 증명서를 위조해 준다. 기우는 아빠에게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거든요"라고 말한다. 기우는 왜 이 대학에 가려고 하는 걸까?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기우의 연세대 재학 증명서는 사수생인 기우가 부잣집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한 패스이다. 그 종이 한 장의 신뢰성은 여동생 기정을 미국 시카고대 나온 미술치료사 제시카로 보증해 주었고, 아빠 기택과 엄마 충숙을 취직시키는 연줄이 되었다.

기우는 그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상류층은 막강한 '경제 자본'을 이용해 자식들에게 '학력 자본'을 안겨 삶의 수준을 세습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 입시의 스펙 전쟁이 시작된다. '2019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생 현황'에 따르면, 서울대 입시에서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학생 중 봉사, 동아리, 교내 수상 등 각 영역에서 최고 실적을 기록한 스펙은 봉사활동 489시간, 동아리 활동 374시간, 교내 수상실적 108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까지 교내 상장을 108개 받았다면 매주 1번은 상을 받은 셈이 된다. 여기에 조국과 나경원 자녀의 예에서 보듯, 금수저를 문 아이들은 부모의 '사회관계 자본'을 이용해 국내외 영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황금빛 스펙을 손에 쥔다.

원래 수시전형은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됐다. 학교생활의 공식 기록인 학생부를 토대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평가 기준이 모호해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정확한 합격 기준을 몰라 일단 최대치로 준비하고 보자는 스펙 인플레이션이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사수생 기우가 아버지 기택에게 "내년에 이 대학에 꼭 갈 거예요!"라고 다짐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런 스펙이 없는 그가 연세대에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명문대는 일부 유력인사들이 자녀에게 계급을 세습시키기 위한 변칙과 반칙이 난무한 격전장이 되었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봉쇄되었을 때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된다. 대학은 그 통로를 공정하게 열어주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고, 우리의 지금 교육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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