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더 교활하고 더 위험한 이 땅의 ‘문민 쿠데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이 지난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부동산 관련 법안을 가결하고 있다. 의사봉 뒤로 빈 통합당 의원들의 빈 좌석이 보인다. 연합뉴스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이 지난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부동산 관련 법안을 가결하고 있다. 의사봉 뒤로 빈 통합당 의원들의 빈 좌석이 보인다.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쿠데타는 후진적 민주주의의 증상이다. 쿠데타는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시간이 부족하거나 뿌리내리게 할 민도(民度)가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만 나타난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는 이를 입증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알제리를 독립시키려 한 드골 대통령에게 알제리 주둔 공수부대가 반기를 들었던 프랑스다. 그러나 쿠데타는 실패했다. 반란군은 알제리 수도 알제를 장악한 뒤 프랑스 본토로 진격하려 했지만 여론이 반군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드골은 이를 쿠데타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TV 연설에서 군사 반란을 "항명 사건"이라고 낮추면서 "중남미 국가에서 벌어지는 희극 오페라 수준"이라고 조롱했다.

이제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런'이란 단서이다. 바로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고전적' 쿠데타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非)무력 쿠데타라는 것도 있다는 말인가. 미국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는 그렇다고 한다. 바로 민주주의의 외양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도 쿠데타라는 것이다.('쿠데타, 대재앙, 정보 권력-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데이비드 런시먼)

이런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한 번에 산산조각 내지 않고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래서 국민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쿠데타로 인식하지 못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와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 간의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머릿수만 많으면 어떤 법이든 만들 수 있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바로 그렇다. 이를 신봉함에서 문재인 정권과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똑같다. 법안 통과 전 거치도록 한 민주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임대차 3법'을 '기립 투표'로 통과시켰다.

버메오는 이런 행태를 '선거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장악하는 공약성 쿠데타'라고 했는데 여당이 21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한 것은 이를 압축해 보여줬다. '독식'은 한마디로 말해 '야당의 견제'라는 '민주적 통제' 장치를 없애고 입법부를 통법부(通法府)로 바꾼 것이다. 민주주의를 '장악'한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는 '이른바 검찰 개혁'에서 절정을 이룬다. 문 정권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식물'로 만들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사실상 검찰총장을 겸하는 '제왕'으로 만들려고 한다. 검찰을 정권의 사냥개로 만들겠다는 소리다.

이와 짝을 이루는 사법부에 대한 쿠데타는 이미 완성됐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채워 입맛에 맞는 사법적·헌법적 판결을 준비해 놓았다. 그대로 되고 있다. 대법원은 괴상한 논리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과 도지사를 무죄 방면했다. 민주주의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윤미향에 대한 수사는 소식이 없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도 마찬가지다. 덮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쿠데타라고 하겠다.

런시먼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군사적 전복이 실패했다고 해서 쿠데타의 위협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민주주의가 외부적인 위협에 처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내부에 진짜 위험이 숨어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문 정권이 벌이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점진적인, 그래서 더 교활하고 더 위험한 '문민 쿠데타'는 이 경고가 남의 일이 아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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