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소명 의식을 돈으로 사려는 정부

'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 – 집단지성의 승리, 김천의료원 70일간의 기록'
의사 숫자가 늘어난만큼 사명감도 커질까

코로나19 확진자를 진료하고 있는 김천의료원 의료진. 김천의료원 제공 코로나19 확진자를 진료하고 있는 김천의료원 의료진. 김천의료원 제공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한 번 방호복을 입으면 화장실을 갈 수 없으므로 대소변이 발생하지 않도록 식사를 하지 않아야 했다. 레벨D 방호복을 30분, 아니 5분만 입고 있어도 땀이 차기 시작한다. N95 마스크를 쓰면 이산화탄소가 마스크 내부에서 재흡입되어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서 뇌혈관 확장에 의한 두통과 졸림이 발생하고 무척이나 지치게 된다. 물도 거의 마시지 못하면서 우리는 주간 10시간, 야간은 14시간을 근무해야 한다. 이렇게 14시간 야간 근무를 하고 나면 마스크와 고글의 압력에 의해 얼굴이 헐고 피부가 벗겨졌다."(김천의료원 응급의학과장 이현희)

김천의료원이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전쟁을 벌인 기록을 담은 책을 펴냈다. '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집단지성의 승리, 김천의료원 70일간의 기록'이다. 지난 2월 22일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이후 코로나19 환자 269명을 치료한 후 4월 30일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해제까지 70일간 벌어진 일들을 의사와 간호사, 지원 부서 담당자들이 담담한 어조로 담아냈다. 전담병원 지정 후 사흘 만에 전체 환자 270여 명을 다른 병의원으로 보내 296병상을 완전히 비운 뒤 이동형 격리음압병상 281병상을 만들고 곳곳에서 밀려드는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했으며, 전담병원 지정 해제 후 일반 환자 진료 시작 한 달 만에 병상 가동률 90%를 이뤄낸 기록이다. 김미경 김천의료원장은 병원을 완전히 비우라는 명령서부터 온갖 세세한 내용까지 SNS로 공유했다. 의료진과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실수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70일간 269명을 치료하면서 400여 직원 중 감염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책은 담백하기 그지없다.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려는 클라이맥스도 없고,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신들의 노고를 돋보이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뜨거운 뭔가가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다. 오히려 덤덤하게 써내려간 글에서 묵직한 진심이 느껴졌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목을 뜨겁게 했다.

책을 덮고 난 후 궁금해졌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코로나19는 손 쓸 방도가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의료진도 마찬가지였다. 감염될 수 있다는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도 환자 곁을 지키고, 피부가 짓무르고 벗겨져도 이튿날 다시 방호복을 입은 이유, 그것은 소명 의식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꼈다고 굳이 강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신경질을 냈던 자신이 밉고 부끄러울 만큼 그들은 어깨에 지워진 책임과 사명을 오롯이 온몸으로 받아냈다.

정부와 여당이 의과대학 정원을 앞으로 10년간 4천 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역에서 공공의료와 비인기 진료 분야에 헌신할 의료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의대 선발 때부터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을 뽑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소명 의식을 갖도록 노력해 보라는 의도인가. 갈수록 인구는 줄어드는 판에 의사만 늘려서 어쩌자는 건가. 불 보듯이 뻔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및 건강보험료 인상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다. 부동산이나 입시 정책처럼 한 번 내질러 보고, 아니다 싶으면 번복할 것인가. 의사 한 명을 배출하는 데 10년 이상 걸린다. 의대 시설 확충이나 교수 확보 대책도 본 적이 없다. 의대 정원을 늘려서 무상교육만 제공하면 공공의료에 기꺼이 헌신할 의사들이 저절로 배출되리라는 생각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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