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음악은 건축과 같은 것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최근 들어 2주에 한 번 정도 작곡가 우종억(1931~ ) 선생님의 자택을 찾고 있다. 선생님의 1940년대 학창 시절부터 최근의 음악 활동에 이르기까지 앨범, 악보, 각종 책과 자료들을 조금씩 나눠 정리하고 있다. 선생님은 스스로의 음악 활동 자료는 물론, 다른 연주자의 공연 기록들도 잘 간직하고 계신다. 1950년 군악대에 입대할 때부터 계산해도 음악 활동 경력이 70년에 이르니, 선생님의 걸음걸음이 바로 대구 음악의 역사이기도 하다.

군악대 연주 사진, 1960년대 이후 시립교향악단 관련 자료에서부터, 필자가 애타게 찾던 대구시민회관(현 대구콘서트하우스) 개관 기념 공연(1975년 10월 5일) 팸플릿과 초대장도 선생님의 앨범 속에 들어 있었다. 지난주에는 오래된 수첩들이 눈에 띄어 한 장씩 넘겨봤다. 선생님이 악상을 메모한 것들과 신문 스크랩들이었다.

'음악을 머리로 하지 말고 가슴으로 하라' '예술가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작곡은 건축과 같은 것. 설계가 탄탄해야 좋은 곡을 쓸 수 있다. 설계가 잘못된 건축물이 쉽게 무너질 수 있듯 구상이 잘못된 곡은 제대로 연주되지 못한다'…. 선생님이 홀로 계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조심스럽게 엿보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팔순에도 오페라 곡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신 저력이 이런 데 있었구나 싶었다.

1900년대 초 대구에 서양음악이 도입된 후 박태준, 현제명, 김진균, 하대응 등이 서양 음악 작곡의 토대를 닦았지만 이들의 곡은 가곡 위주였다. 가곡뿐만 아니라 기악과 관현악, 합창곡을 넘어 교향곡과 오페라까지 작곡한 사람은 우종억 선생님이 최초다. 우종억 선생님의 곡은 국내를 비롯해 일본, 미국, 호주, 폴란드,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많은 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우종억 선생님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육군 군악대에 입대했다. 고등학교 악대부에서 트럼펫 연주를 했던 것이 바탕이 됐다. 1955년까지 만 5년간 군악대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며 김인배(KBS교향악단 초대 단장), 이재옥(전 서울대 교수) 등 한국 음악계의 토대를 닦은 음악가들과 함께 생활했다. 군악대 활동을 하면서 화성법을 틈틈이 배워 행진곡을 작곡했다. 그는 군 시절, 자신이 창작한 곡이 무대에서 객석으로 울려 퍼질 때의 감동이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7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대구교향악단 창단 멤버가 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1961년 계명대 종교음악과로 편입을 결정, 정식으로 작곡을 전공했다. 1964년에는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약 20년간 트럼펫 주자로 활약했고 1970년부터 16년간 대구시향 부지휘자를 거쳐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계명대 음대에서 1997년 정년 때까지 후학을 기르면서 지역 음악계 여러 분야에서 초석을 놓았다.

한국지휘연구회를 창설했고 계명대에 국내 최초로 지휘전공 과정을 신설했다. 작곡 분야에서도 굵직한 걸음을 걸었다. 1990년 영남작곡가협회를 창립했고 1991년에는 영남국제현대음악제를 창설했다. 2002년에는 세계 음악사에 동양 음악의 자리를 굳건히 구축하겠다는 취지를 내걸고 동아시아작곡가협회를 창립했다. 같은 해 동아시아 국제현대음악제도 창설했다.

"우리나라 연주자들의 수준은 세계 정상급에 올랐다고 봐요. 이제는 창작에 힘을 쏟아야 해요. 음악 발전에 한 획을 긋겠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이 필요합니다." 늘 창작곡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그는 대구시향 상임지휘자로 활동할 때, 정기공연 레퍼토리 선정을 위해 창작곡을 공모했다. 이 일은 대구 음악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기록된다. 창작곡 공모는 신진 작곡가들에게 창작곡 발표의 기회를 열어주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임주섭(영남대 작곡과 교수), 박기섭(대구교대 작곡과 교수) 등이 당시 창작곡 공모에서 발굴된 작곡가들로 현재 지역 작곡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선생님의 제자 작곡가 권은실 씨는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너거 책 좀 읽나? 너거 왜 음악을 하노?'라는 질문을 던지셨다"고 했다. 간단하지만 묵직한 그 질문은 제자들이 음악 활동을 할 때 늘 되새기게 되는 말이 됐다. 온몸으로 대구 음악사를 써온 우종억 선생님이 빚어내 온 수많은 스토리들이 이제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에 정리되고 있다. 이제 선생님의 삶이 미래의 음악인들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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