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죽음 앞의 모자(帽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유명 인사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도 그랬다. 여권 신장 운동으로 사회 활동을 시작해 3선 서울시장에 오른 그가 성추행 고소에 휘말리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박 시장을 고소한 여성은 13일 대리 기자회견을 통해 박 시장으로부터 4년 동안 성적 괴롭힘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용기를 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샘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놨습니다." 대한민국 법의 심판을 받고 사과를 받고 싶었다는 이 여성의 바람은 이룰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이 여성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2차 가해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박 시장 조문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빌미는 서울시가 자초했다. 박 시장은 유서에서 "화장을 해서 고향 부모 산소에 뿌려 달라"고 했다. 18년 전 생전 유서를 통해서도 "내 부음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 신문에 내는 일일랑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그의 유지대로 장례는 가족장(葬)으로 단출하게 치르는 게 옳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장례를 대대적으로 치름으로써 나라를 갈등과 증오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사람의 삶은 단편적 요소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 공과 과에 대한 판단에도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고장 잉크도 마르기 전에 우리 사회는 '판단'을 서둘렀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정치권은 도리어 갈등을 부추겼다. 더불어민주당은 성추행 고소 사건에 사실상 침묵하며 2차 피해를 방조했다. 미래통합당 등 야당은 조문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사안을 정쟁화했다.

어찌 보면 이번 조문 논란은 애도(哀悼)와 추모(追慕)를 구분하지 않아 빚어진 일일 수 있다. 애도와 추모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애도는 연민에, 추모는 그리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가까운 사람이 타계하면 공과를 떠나 애도를 하는 게 인간의 도리이고, 존경하거나 그리운 사람이 세상을 뜨면 추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박 시장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예로부터 죽음 앞에서는 모자를 벗는 게 예의"라는 말을 남겼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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