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선조들의 무더위 극복기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코로나19의 위세가 여전한 상황에서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전통시대에도 무더위는 극복해 나가야 하는 대상이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체면을 갖추기 위해 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답답하다. 그래도 전통시대에도 더위를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총동원되었다. 먼저 얼음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대표 음식이었다.

신라 시대 경주에 석빙고 유적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얼음을 이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철 한강의 얼음을 떠서 동빙고와 서빙고에 보관하였다. 동빙고는 한강변 두뭇개,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고, 서빙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에 있었다.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 의금부의 죄수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다.

얼음은 겨울에 네 치 두께로 언 후에야 뜨기 시작하였다. 난지도 등지에서 갈대를 가져다가 빙고의 사방을 덮고 둘러쳤는데 냉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얼음을 빙고에서 처음 꺼내는 음력 2월 춘분에는 개빙제(開氷祭)를 열었다. 얼음은 3월 초부터 출하하기 시작하여 10월 상강(霜降) 때 그해의 공급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나라에서 설치한 빙고가 있었지만, 얼음의 수요가 늘어나 공급이 부족하게 되자, 18세기에는 사적으로 얼음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어 한강 근처에만 30여 개소의 빙고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선비나 백성들은 계곡이 있는 산의 산행을 통해 더위를 이겨냈다. 선비들 중에는 산행을 통하여 더위도 이기고 스승과 제자들이 회합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행에서 느낀 감흥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담아 기행문으로 남겼는데, 16세기 영남의 선비 조식은 지리산 기행문인 '유두류록'을 남겼다.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산은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 지리산, 오대산, 묘향산, 속리산, 가야산 등 예나 지금이나 명성이 높은 산들이었다.

서울에서는 삼청동이나 북악산, 인왕산, 남산의 계곡들이 대표 피서지였다.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 정약용은 1824년 여름에 '소서팔사'(消暑八事), 즉 '더위를 씻어버리는 8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다산시문집'에 전하는 8가지 소서법은 소나무 단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시원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 등 여덟 가지였다.

전통시대 더위를 쫓는 대표적 물품은 부채였다. 조선시대 풍속화에는 부채를 들고 한가롭게 더위를 피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19세기의 학자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부채의 여덟 가지 장점인 팔덕선(八德扇)이 기록되어 있다. 팔덕이란 바람 맑은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는 덕, 값이 산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햇볕을 가리는 덕, 독을 덮는 덕 등 8가지로 부채의 실용성을 흥미롭게 표현하였다.

우리 속담에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있다. 음력 단오는 곧 여름이 시작되니, 더위에 대비하여 부채를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조선후기 서울의 풍속을 기록한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단오에 부채를 서울 관원에게 나누어주는데, 부채 면에 새나 짐승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여 부채에 그림 그리는 풍습은 오래도록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선이 부채에 그린 세검정 모습은 세검정의 복원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와 무더위의 기세를 피해 조용하고 한적한 산과 계곡을 찾아볼 것을 원한다. 여력이 되면 정약용이 시에서 읊었던 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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