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좌절감을 읽지 못하는 정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은 정권의 조바심 탓
코로나 시대 청년들의 불안을 읽지 못하는 정치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세상사를 비판하면서 가장 쉬운 방법이 정부와 대통령을 욕하는 것이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으니 벌어진 결과를 두고 그들을 욕하는 것이 비이성적이지는 않다. 다만 역대 어느 정부나 대통령도 이런 류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감안할 때 현 정권이 무능하고 부패해서 작금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식의 단정적 비판은 그다지 슬기롭지 못해 보인다. 어느 대통령을 막론하고 5년 재임 기간은 짧게만 느껴졌을 것이고, 뭔가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조바심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방향이 옳고 지향점이 선명할수록 과정은 투명하고 철저해야 한다. 과정에는 여론 수렴이 필수다. 다만 여론이 정론은 아님도 명심해야 한다. 여론은 수렴 방식에 따라 특정 계층이나 집단 이기심이 발현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양한 소수 의견도 청취해 정론에 가깝게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5년은 짧다. 국가 대사라면 준비 5년, 숙성 5년, 결과 5년 정도가 필요하겠지만 내리 세 번씩 정권을 맡는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당장 결과물에 급급한 정권이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다.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논란도 그렇다. 청와대와 정부가 해명에 나섰고, 오해에서 불거진 지나친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청년들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데는 실패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전체 정규직 규모가 커진다는 식의 해명은 정작 청년들이 분노한 이유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오답이다. 애초에 취업 준비생들이 공항 보안 검색 요원을 꿈꾼 것은 아니었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것은 이른바 꼰대적 변명에 불과하다.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한 시대의 대한민국 청년들은 어느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암담한 현실에 살고 있다. 청년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오죽하면 주식 투자 초보를 어린이와 합성한 '주린이', 부동산을 시작하는 '부린이', 금 투자에 나선 '금린이'라는 말이 등장할까. 주식 투자 앱을 새로 깐 사람들 중 절반이 청년들이고, 월급 받아 집 사기는 틀린 마당에 전세금을 끼고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 보자는 30대가 늘고 있다.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고 한다. 사상 최대 수준의 시중 유동성이 갈 곳을 찾고 있다. 현금과 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 예금에다 만기 2년 미만 예적금·금융채 등 금융상품 잔액을 합친 돈이 올해 4월 기준 3천18조5천550억원에 달한다. 이런 대기 자금이 3천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런데 내 주머니에는 돈이 없다. 주식도 돈을 빌려서 투자하고, 부동산도 전세금을 끼고 신용대출을 받아서 근근이 마련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부터 막겠다고 한다.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정의롭지 못하거나 방향이 틀려서가 아니라 정권이 보여주는 조바심에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초등학교 사회 과목에 나오는 정치의 의미다. 공정한 과정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의 지향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정치 그 자체는 아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가려고 사람들을 다독이는 것이 정치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자는, 어찌 보면 너무도 정의로운 결정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그것이 불의여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예기치 못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음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모른 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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