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기억과 트라우마

수요집회 불참을 선언하며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장부 파란을 일으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8일 대구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참석해 소녀상 곁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수요집회 불참을 선언하며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장부 파란을 일으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8일 대구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참석해 소녀상 곁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육체적 충격은 마음의 상처 즉, 트라우마를 남긴다. 전문 용어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도 한다. PTSD 증상은 개인에 따라 충격을 겪은 즉시 시작될 수도 있고 수일, 수주, 수개월 또는 수년~수십 년이 지나서 나타날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기억을 다르게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것은 너무 과하게 기억하고, 어떤 것은 너무 적게 기억한다. 기억이 파편화된 나머지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사건을 논리적으로, 순차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컨대 성폭행 피해 여성이 범인의 냄새 같은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하는 반면, 사건 후 누가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갔는지 등과 같은 사항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식이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운영 난맥상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인신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군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친일파다' '대구스럽다' '치매에 걸렸다'는 등 왜곡과 비하, 혐오도 서슴지 않는다. 혹자는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겪은 과거에 대한 인터뷰 진술이 엇갈리거나 세부 내용에 다른 점이 있다며 '위안부로 끌려간 게 맞느냐'는 식의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성폭력 피해자의 진정성과 신뢰성은 진술과 증언의 '비일관성'에 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문화비평가 슬라보예 지젝(71)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지적했다. "강간당한 여성의 진술에 진정성이 있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그 진술이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고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진술할 때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야말로 그 진술에 진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나머지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몸과 마음이 짓밟히는 질곡을 겪었으면서도 평생을 죄지은 사람처럼 살아온 할머니들이다. 그들의 트라우마 기억이 조각나 있거나 변형돼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할머니들로서는 위안부 피해 실상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해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일 수 있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야만적 2차 가해는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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