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현진건에서 월탄, 그리고 간송까지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주임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주임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주임

대구문학관의 근대문학자료들은 선정위원회에서 정한 대구의 근대문인 47인에 대해 개개인의 단행본과 작품이 실린 문학잡지 및 동인지들을 오롯이 구축하는 것이었다. 아카이빙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와 그들의 행적을 살피면서 그들 내의 교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근대문화예술인들과의 접점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 단적인 예로 현진건과 전형필을 들 수 있다. 이들을 통해 많이 동떨어져 보이는 인물들이 공통의 사교적 접점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어지는 근대문화예술사의 한 흐름을 접할 수 있었다.

현진건은 1900년 대구 태생으로 아호는 빙허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수난에 처한 민족의 현실과 운명을 탁월하게 묘사한 리얼리즘의 선구자이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날' 등 20여 편의 단편 소설과 7편의 중·장편 소설을 남겼다. 대구전보사장을 역임한 현경운의 막내아들이었으며, 그의 가족으로는 백형 현홍건, 중형 현석건, 의열단과 독립당 상해 촉성위원을 지닌 막내형 현정건 등이 있다. 대구에서 아버지가 개설한 대구노동학교를 잠시 다녔으며, 이상화, 백기만, 이상백 등과 교우하여 '거화'라는 프린트판 습작동인지를 발간하였다. 이상화를 '백조' 동인으로 참여시킴으로서 지역문단과의 교류를 주선하였고, 그를 비롯한 박종화, 나도향, 안석영, 이광수, 김기진, 박영희 등이 주축인 된 '백조'를 통해 1920년대 조선 문단의 동인지 시대를 이끌었다.

전형필은 1906년 서울 태생으로 아호는 간송이며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약탈, 수탈된 문화재를 자비를 들여 지켜낸 문화재 수집가이다. 일본인 수집가를 찾아 되사거나 경매를 통해 극적으로 지킨 문화재들을 보존하기 위해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현재 간송미술관)'을 설립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전형필은 휘문고보에서 이마동과 친우로 지내며 그의 스승이었던 현대미술의 선구자 고희동을 만났다. 고희동의 주선으로 그의 영원한 스승인 위창 오세창을 만났으며, 이때 아호를 사사받았다. 33인 민족대표이면서 우리나라 서화가의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을 편찬한 오세창은 간송에게 문화재를 바라보는 혜안을 알려줬다. 간송의 이종사촌 형은 박종화로 현진건과는 문학적 동인이자 사돈지간이도 하다. 박종화와 현진건을 사돈관계로 맺어준 것은 그들과 지음(知音)으로 있었던 이상화였다.

문학자료를 아카이빙하며 작가들의 이와 같은 생활사 혹은 관계사를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드러난 인물간의 접점을 매개로 '근현대 문화예술인 교류도'를 작성하여 지역의 근현대 문화예술가들의 관계를 조망하였으며, 전시에 활용한 적이 있었다. 문화예술 아카이브도 작품과 유품 등의 자료 구축의 중심에서 벗어나 인물의 가계와 행적 등의 생활사를 통해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관계로까지 확장되는 연구를 함께 진행한다면 아카이브 자료의 미래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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