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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文정권의 역사 뒤집기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하는 일은 기록·사실을 조작하는 것이다. 지시를 받아 신문·공문서 등에 실린 경제 수치나 날씨 같은 팩트를 고쳐 쓰며 현재에 맞춰 과거를 수정한다. 그가 근무하는 기관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진실부'(Ministry of Truth)다. 독재정권이 현재에 맞춰 과거를 고치는 이유는 정권을 향한 비판이나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1984'에 등장한 일들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파묘(破墓)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했다. 파묘 대상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좌파 진영에선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60여 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이 문제라고 했던 터다. 이 논리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도 파묘 대상이다. 조선 사화(士禍) 때의 '부관참시'를 목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법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2년 형을 확정한 한명숙 전 총리의 판결도 여권은 뒤집겠다고 나섰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든 정황이 한 전 총리가 검찰 강압 수사와 사법 농단의 피해자라고 가리킨다"고 불을 지폈다. 여권이 재조사 근거로 내세운 비망록은 그 내용이 허위로 판단돼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유죄 증거로 판단한 한 전 총리 동생 전세금에 쓰인 1억원 수표에 대해선 여권은 무시한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는 게 사법 농단 아닌가.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1987년 칼(KAL) 858기 폭파 사건을 두고 "진상 조사가 미진한 게 너무 많다. 조사 결과를 재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모두 북한의 폭탄 테러로 결론을 내렸다. 좌파 정권에서 조사한 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정부·여당은 총선 압승을 무기로 역사 뒤집기에 광분 중이다. 보수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조사로 '보수=적폐' 프레임을 계속 우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거돈·윤미향 사태로 수세에 몰린 국면 전환 노림수도 깔렸다. 박근혜 정권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논란을 일으켰다. 입맛대로 역사를 재단하려는 것은 어느 정권이나 도긴개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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