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코로나라는 선물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와 국민의 재앙이 특정 정치세력엔 기회인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8년간 중국인 1천500만 명이 죽은 중일전쟁은 그 대표적 예이다. 1921년 발족한 중국 공산당은 꾸준히 세력을 넓혀 1931년에는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임시정부를 수립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를 경계한 장제스(蔣介石)는 1930년 12월부터 1934년 10월까지 5회에 걸쳐 '초비'(剿匪) 즉 토벌에 나선다.

4회까지는 국민당의 내분과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화북지역으로 남하하는 일본군의 압박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80만의 병력이 투입된 5회 초비에서 루이진이 함락되면서 공산당은 서북 오지로 도망쳤다. 이른바 대장정(大長征)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에 갇힌다. 이 상태가 계속됐다면 공산당은 말라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으로 공산당은 기사회생한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심해 일본을 물리치자는 빗발치는 여론을 이용해 국공합작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산당의 홍군(紅軍)은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배속됐지만, 일본군과 전투는 피하거나 형식적으로 치르면서 전력을 고스란히 보전했다.

이게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 그래서 마오쩌둥(毛澤東)은 일본군을 매우 고마워했다. 1956년 구 일본군 장성 엔도 사부로(遠藤三郞)를 초청해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일본 군벌이 우리 중국에 진공(進攻)한 것에 감사한다. 그 전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없다."

문재인 정권도 우한 코로나에 감사해야 할 듯하다. 문 정권은 감염원인 중국인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은 탓에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하던 지난달 총선 연기까지 만지작댔으나, 이제 코로나가 문 정권의 실정을 덮어버리면서 총선을 낙관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민간의 창의와 노력, 성숙한 시민정신이 일궈낸 코로나 대응 결실을 마치 자신들의 공인 양 포장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나라와 국민에게 재앙, 그것도 정권의 잘못된 대응으로 더 큰 재앙이 된 우한 코로나가 문 정권에는 위기 탈출의 선물이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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