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모순(矛盾)의 묘(妙)

김사윤 시인

김사윤 시인 김사윤 시인

모순(矛盾)은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한 상인이 호객행위를 하다가 한 구경꾼에게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이야기다. 상인이 창의 예리함과 방패의 견고함을 자랑하던 중에, 한 구경꾼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는 거요?"라고 묻자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모순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흔히 쓰인다. 모(矛)는 창의 뜻을 가졌고, 금문(金文)에는 전차에 끼우기 위한 고리가 그려져 있다. 사람이 들고 다니는 용도가 아니라 전차에 끼워서 적을 위협하던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순(盾)은 투구에 차양을 내린 형태로 원래 눈을 보호하기 위한 뜻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눈'이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적을 공격하거나 막는 것이 곤란할 수밖에 없다. 몸의 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음의 눈이다. 몸을 다치면 불편해질 뿐이지만, 마음을 다치면 생을 버릴 수도 있다. 적어도 '먹고 사는 것'에 고민이 없을 법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모두 이 '마음'을 다쳤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상인이 팔던 창과 방패는 과연 어떤 제품이었을까? 당대 최고의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과장된 표현이 그를 일순간 바보로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다. 말도 되지 않는 말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반면 진솔한 사람이 제대로 표현을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사회적 성공의 척도라고 여기는 돈과 명예를 가지는 이들은 모순되게도 전자인 경우가 많다. 상대가 얼마나 능숙하게 어휘를 구사하느냐에 따라서, 가끔 선(善)보다 악(惡)을 선택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한다. 이는 건전하고 밝은 사회의 슬로건에는 뭔가 걸맞은 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바로잡는 것이 옳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과장된 불안은 현실보다 더 큰 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연일 터져 나왔다. 싸구려 마스크가 말도 안 되는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였던가. 폭리를 취하기 위한 중개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방호효과가 전혀 없는 제품을 '신제품'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당시에는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 후 정부가 공급대책을 발표하고 마스크를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직접 마스크를 제작하여 소외된 이웃에 공급하는 단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중국으로부터 불어온 역병(疫病)에 한 종교단체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공포가 극에 달하자, 이들을 향한 저주와 분노가 쏟아졌다. 그 후 용서와 화해, 희망의 불씨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창과 방패는 공격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지켜내기 위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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