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예술의 기억] 위기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자꾸 뭔가를 사고 있다. 일부 과장된 언론 기사와는 달리 동네 마트에 물건들은 그대로 있고, 냉장고 파 먹기만 해도 한 달은 거뜬히 살 수 있을 텐데 왜 자꾸 뭔가를 사게 될까. 불안하다. 지금 우리의 일상이, 예전 그대로의 일상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든 시간들이다.

미국에 있는 친구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에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고 한 게 언제인데, 고향 대구가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로 전해지고 있어 속상하다며 안부를 물어온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우리는 잘 있다' '잘 이겨낼 것이다'밖에 없다.

지역 문화계에서도 공연이 모조리 취소됐고 전시장에 이미 내걸린 작품들도 관람객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민간 화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난 35년간 문화예술 행사 정보를 전달해 온 대구문화의 3월호는 공연 행사 단 하나도 소개하지 못한 채 발간될 예정이다.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그만큼 예술인들의 생계도 더 어려워졌다. 모두들 날카로워져 있는 지금으로서는 건강과 생존이 위태로운 시기에 무슨 문화예술이냐고 되물을 수 있기에 힘듦을 호소할 곳도 없다.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 지금 '현재'가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회상할 수 있는 '과거'가 되길 바라볼 따름이다.

이럴 때 인생 선배, 문화예술계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해 본다.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수십 년 이상 활동해 온 사람들은 다양한 위기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지역에서 30년 이상 예술 단체를 이끌어 온 한 예술인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했다. 예술가로서 오롯이 한길을 걸어가기도 쉽지 않지만, 예술 단체 혹은 문화 공간을 이끌고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렵다. 개인 활동과는 달리, 단체가 어려움에 처하면 여러 사람이 함께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기의 무게감이 더 크다.

39년간 화랑을 운영해 온 동원화랑의 손동환 대표는 인생에서 위기를 만났을 때, 초조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어오지 않는지를 늘 살펴보라고 권했다. 조급한 마음은 눈앞을 쉬이 가리기 때문이다. 평생을 예술 현장에서 뛰어다니다 몇 해 전 우리 곁을 떠난 고(故) 박남희 경북대 미대 교수는 작업 재료를 사러 나갈 수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시절, 선물 포장지와 주변의 종이를 모아 붙이다 보니 새로운 형식의 콜라주 작업을 실험하게 됐다고 했다.

사진가 강위원 선생은 지금껏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 때문에 무언가가 잘못되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눈앞에 닥친 시련이 좋은 일을 가져다줄 사인이라는 긍정적인 태도가 그의 해결 방법이었다.

'위기를 위기로 느낀 적이 없었다'는 영남오페라단 김귀자 예술감독은 사회가 어려울수록 예술 작품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위기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지역에서 가장 오래 소극장을 이끌어 온 극단 예전의 김태석 예술감독은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을 믿고 밀어 주는 든든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무용가 백년욱 선생은 모든 시간과 상황이 어려웠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을 자기 수양과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고 했다. '매 순간이 어려웠다'는 대구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박진규 단장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애착, 가족의 이해와 도움이 자신을 이끌어 준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지역의 한 첼리스트는 지역민을 위로하는 첼로 연주 동영상을 찍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 한 광고업체는 '대구시민의 힘을 믿습니다, 힘내라 대구' 동영상을 제작공개했다. 개인이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쉬이 할 수 없는 시간들, 사람들은 또 이렇게 각자의 몫을 찾아가고 있다.

동원화랑 손 대표의 말이 시민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파도가 없으면 바다의 생명이 없다고 하지요. 인생의 위기도 그렇다고 봐요. 파도를 극복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는 게 있을까요. 마음을 어떻게 먹고 보느냐에 따라 용기가 불쑥 생기기도 하고, 푹 주저앉게도 되잖습니까. 위기도 마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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