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둘레] 봄이 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정오에 산책이라도 할 요량이면 자신을 따라다니는 또 하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림자다. 그림자는 계절이 바뀜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드러낸다. 한겨울에는 축제 때나 볼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긴 다리가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입춘이 지나면 그림자는 하반신이 짧아져 아담한 체구로 돌아온다. 날이 슬슬 더워지면 옆으로 퍼져 눈사람이 되고, 땀이 나기 시작하면 더욱 짜부라져 오뚝이로 변신한다.

그림자는 하지에 가장 짧아진다. 태양의 고도가 그때 가장 높아서다. 만일 그림자가 가장 짧은 날부터 다시 가장 짧아지는 날까지의 날수를 세어본다면 1년이 며칠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1년은 365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림자의 변화 같은 관측을 통해 알아낸 1년은 365.2422일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1년 하고도 약 6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만일 계속해서 1년을 365일로 정하게 된다면 누적된 오차는 날짜와 계절을 어긋나게 만들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올해같이 4로 나눠지는 해에는 2월에 하루를 더 넣는다.

그런데 왜 하필 2월이 그 모든 수고스러움의 대상이 될까. 그것은 고대 로마에서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을 제정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달력을 기본으로 만든 율리우스력은 31일과 30일을 섞어 1년이 365일이 되도록 하였다. 문제는 그런 방식으론 1년이 366일이 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평년의 경우 2월에서 하루를 뺐다. 이는 당시의 새해가 지금의 3월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카이사르는 집정관으로서 자신의 취임을 앞당기기 위해 3월 대신 지금의 1월을 새해로 만들었다. 그 후 로마의 첫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가 자기 생일이 있는 8월에 자신의 이름(August)을 붙이고 8월을 31일로 만들면서 2월에서 다시 하루를 빼 2월은 28일이 되었다고도 한다.

2월은 형제들의 구색을 맞추느라 태어나 이리저리 치이는 집안의 늦둥이 막내 같은 존재다. 그러나 막내는 결코 반짝이는 존재감을 잃는 법이 없다. 봄이 곧 시작됨을 알리는 날과 소망을 담는 달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정월 대보름달을 보았다. 보름달은 마주 본다는 표현이 가장 알맞다. 실제로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달이 놓여 있으니 말이다. 저녁 무렵 동쪽 하늘에 둥실 떠올라 서서히 서쪽으로 움직이며 밤새 대지를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은 불 꺼진 창문으로 스며 들어와 달빛에 물든 이불을 덮고 자는 호사를 누리게도 한다. 보름달은 사랑이 충만한 달이다.

달이 태양을 마주하는 대신 옆으로 비껴 있는 위치에 있으면 반달이 된다. 이 모든 것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우리의 주변을 다시 달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달은 매일 조금씩 움직이며 다른 각도에서 태양빛을 반사한다. 상현달은 우리가 흔히 보는 반달이다. 낮에 나온 반달이라는 동요처럼 낮에 떠올라 저녁이면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다. 왼쪽이 불거진 하현달은 자정이 지나 떠오르니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대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퇴근하는 저녁시간 서쪽 하늘에서 잠시 볼 수 있는 달은 초승달이다. 서쪽 하늘에 떠오른다는 건 그것이 지고 있다는 걸 뜻한다. 초승달은 여인의 정갈한 장식품처럼 요람에 누워 있는 가녀린 공주의 모습인 듯 앙증맞은 자태를 하고 있어 눈길을 잡아끈다. 일생에 한 번 보기 힘든 달도 있다. 그믐달이다. 일찍이 소설가 나도향은 새벽에 떠오르는 그믐달을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사람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는 무슨 한 있는 사람, 혹은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볼일 보러 나온 사람, 혹은 도둑놈이 보는 달'이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철야 근무 마치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친 사람도 포함될 것 같다. 아무튼 그믐달은 서럽고 외로운 달이다. 그걸 볼 일이 없는 편이 나은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 때보다 2월이 더디 가는 요즘이다. 무시당하고, 손해 보고, 억울함을 입어도 꿋꿋하게 버티는 집안의 막내 같은 2월. 그들은 알고 있다. 봄이 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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