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맥가이버칼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새빨간 저녁노을 새털구름 가득 물든 시골 가을 하늘엔 큐피드 화살을 쏘기 위해 연신 불빛을 밝혀대는 반딧불이 장관이다. 새빨간 경운기 짐칸에 나란히 걸터 앉은 남녀 주인공은 사과꽃향기 가득한 과수원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이 소년의 꿈속에 나타난 모양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 노력해보지만 마치 현실 세계에서 만난 듯한 그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쳐 놓은 터라 도통 잠을 들 수 없다.

초록색 형광 시침이 숫자 3을 가리킨다. 꿈에서 깬 후로 몇 시간째 잠 못 이루며 뒤척였더니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마저 요란하다. 좁은 방에 나란히 자고 있던 스승이 깨지 않도록 쥐 죽은 듯 이불을 빠져나와 책상에 앉는다. 손가락 마디 마디를 꺾어 '딱-딱' 소리를 내는 걸 보니 뭔가 대단히 비장하다.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거야. 한국 최초 무비컬!'

새하얀 모니터 위에 새까만 커서만 깜빡 거린다. 무대 보조원에게 글쓰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나 보다. 아무것도 써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초롱 하던 소년의 눈동자는 어느새 초조한 듯 모니터 위에 힘없이 깜빡인다. 칠흑 같은 새벽녘, 소년의 검지가 키보드를 '톡톡' 두드리는 소리만 단칸방의 정적을 깨우는 가운데, 수면 중 무의식 세계에 계신 스승이 성악 발성으로 한마디 던지곤 이내 코를 곤다. "음~ 뮤지컬이란 말이지"

스승은 늘 맥가이버와 같다. 음악과 대본을 만들 때도, 무대를 만들 때도 적재적소 본인의 재능을 꺼내 보란 듯 마침표를 찍는다. 이른 나이에 벌써 여럿 뮤지컬을 만들어내며 뮤지컬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스승을 따라다니다 보니 이젠 트럭 운전도, 조명 달기도 제법 능숙해진 건 사실이지만 창작에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난재다.

'딸깍 딸깍'

뮤지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은 푸치니의 '라보엠'을 가지고 어떻게 '렌트'를 만들었을까?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미스터리 소설을 가지고 어떻게 '오페라의 유령'을 만들었을까? 기존의 이야기를 차용하는 여러 사례들의 분석을 통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시점과 시대를 변화시킨 점.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낸 점. 또 하나,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투영하여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점'

해 질 녘 소를 몰고 가는 마을 친구들, 경운기 벨트와 소여물 작두에 손가락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고모, 눈이 수북이 오는 날엔 총을 들고 꿩 사냥을 나가신 작은 할아버지, 경운기를 몰고 다니는 장가 못 간 뚱뚱한 아저씨, 베트남 국제결혼이 걸린 현수막 등 산골 소년의 유년시절은 온통 뮤지컬 소재였다.

스승에게 받은 맥가이버 칼을 든 소년은 4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이듬해 2007년 제1회 DIMF에서 산골 총각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You Are My Sunshine'으로 대학생 부문 인기상을 차지하며 뮤지컬 인생 서막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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