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오기와라 히로시. 김난주 옮김/알에치코리아/2017

지나간 날, 그토록 그리운 날들

어린 날의 싱그러움도, 젊은 날의 화려함도, 어중간한 날의 안정감도 차츰 그리워지고 익숙해지고 있을 때 운명처럼 다가온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는 1956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다. 이 책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여섯 편의 단편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담백한 감성으로 써내려갔다.

여섯 편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가족을 잃거나 가족에게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가족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가족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작가는 흔하디흔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만의 잔잔한 감성으로 차근차근 풀어냈다. 열다섯 딸을 잃은 아빠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딸의 성인식을 치르는 작품 '성인식'.

"다들 스즈네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타인이니까."(24쪽)

하지만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 타인이 아닌 그와 아내.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딸의 성인식을 치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딸의 스무 살을 기억하고자.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지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이들의 생채기는 아물어질지…….

사그라질 듯 병원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언젠가 내가 그녀의 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엄마는 이제 내 엄마 일 적의 모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언제나 "엄마!"라며 자신 있게 부르기가 겁이 난다. 존재하지 않는 딸의 성인식을 치른 그와 그의 아내처럼 나도 이제 기억 속에 내 엄마를 각인시켜 둔다.

두 번째 단편 '언제가 왔던 길' 또한 치매에 걸린 엄마와 찬란했던, 엄마의 나이만큼 먹은 딸이 다시 만나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권영희 작 '그리움'
권영희 작 '그리움'

"오래 떨어져 사는 중에 그 옛날의 엄마 나이를 지나버린 나는 지금은 그런 것들을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그런 엄마의 일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85쪽)

여려진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애쓰는 엄마의 흔적이 내내 아팠다. "또 올게."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차곡차곡 담겼다. 앙상한 엄마의 손을 잡고 나도 자그맣게 말했다.

"또 올게. 나도."

책 제목이기도 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읽는 내내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찾아온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손님.

"자, 얼굴을 다 시 한 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앞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는지 신경이 쓰여서." (142쪽)

차마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마지막 문구다. 가슴이 아렸다. "엄마, 나 한 번 더 쳐다봐." 병실 문을 나서기 전에 서너 번은 더 엄마를 재촉했다. 힘겹게 팔을 흔드는 엄마를 보며 언젠가 겪게 될 먼 이별을 생각한다.

지나간 날들, 그토록 그리운 날들은 이제 하나하나 기억 속에 머무르고 있다. 언젠가 그 기억 속에 머무를 또 다른 나를 생각하면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그렇게 우리에게 지나간 날들, 그토록 그리웠던 날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든다.

권영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