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소설가 염상섭이 바라본 나혜석

옛 사랑에 속죄하고 새로운 사랑에 진실했던 신여성, 엘리트 남성 작가 시선에선 '방종'으로 비쳐

염상섭 '해바라기'(1924, 박문서관) 표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염상섭 '해바라기'(1924, 박문서관) 표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이자, 최초의 여류소설가이며, 세계일주여행을 한 최초의 여성이다.

이 빛나는 업적과 달리 그녀 삶은 고통스러웠다.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오십 삼 세 나이로 시립요양원에서 행려병자로 죽음에 이른 삶의 여정은 몰락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하기가 어렵다.

명민하고 열정적이었으며,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지녔던 나혜석이 왜 이런 몰락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혜석을 소재로 한 염상섭의 소설 '해바라기'(1924)에서 그 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해바라기'는 나혜석, 김우영 부부의 신혼여행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해낸 소설이다.

나혜석이 변호사 김우영을 처음 만난 것은 1917년, 스물한 살 때였다. 이 무렵 나혜석은 연인 최승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져있었다. 김우영은 수년간에 걸쳐 헌신적 애정을 퍼부었고, 그 애정에 감동한 나혜석은 마침내 마음의 상처를 딛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결혼에 앞서 나혜석은 김우영에게 네 가지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요절한 연인 최승구의 묘지 참배였다. 김우영은 약속대로 최승구 묘지가 있는 전남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참배 후 비석까지 세운다. '해바라기'는 나혜석, 김우영 부부의 이와 같은 기묘한 신혼여행을 다루고 있다.

이제 막 남편이 된 사람을 끌고 옛 연인의 묘소로 신혼여행을 떠난 나혜석의 행동은 당시에는 물론 후대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는 지극한 완고함. 소설가 염상섭은 신혼여행 사건을 테마로 한 소설 '해바라기'를 통해서 나혜석을 이렇게 규정하였다. 아울러 김우영과의 결혼 역시 첫 사랑에 실패한 후, 영양가 없는 사랑보다는 능력 있는 '후견인'을 원한 나혜석의 이해타산의 결과로서 단정 짓고 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신혼여행 사건을 바라보면 순수하고 솔직하며 융통성 없는 나혜석의 모습이 느껴진다. 혼자 살아남아 새로운 사랑을 찾은 자가 죽은 연인에 대해 느끼게 되는 속죄의 마음. 그리고 부부의 인연을 맺는 상대에게 한 치의 어두운 비밀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정직함과 솔직함이 거기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나 투박했을 뿐, 나혜석은 최승구도 김우영도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혜석이 살았던 시대는 이와 같은 여성의 솔직한 자기표현은 사회의 평온을 깨는 불순한 자질로 인식되던 때였다. 여전히 인내와 순종이 여성의 미덕이 되던 때였다.

이 완고한 인식의 가장 앞자리에 서있었던 것이 바로 염상섭이나, 이광수, 김동인과 같은 근대적 교육을 받은 엘리트 남성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남녀평등을 외치면서도 나혜석을 비롯한 신여성들의 애절한 자기목소리를 방종한 성품이라며 매도해댔다. 그 점에서 나혜석의 몰락은 지나치게 솔직했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도 있을 듯하다.

관련기사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