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북 비핵화는 시작도 않았는데 종전선언부터 하자니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진전이 없는 북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연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미국이 수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9월 유엔총회에 맞춰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 김정은이 뉴욕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협의했지만, 미국은 ‘두고 보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사실상 거부 의사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연내 종전선언’ 계획은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북한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때부터 연내 종전선언을 요구했다. 15일에는 대외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이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거부는 확고하다. 카티나 애덤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했을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평화체제 구축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 이후에 논의할 문제라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한 번으로 종료되지만, 비핵화는 다르다. 신고·확인·검증이 하나로 묶인 시계열(時系列)의 문제라는 것이다. 비핵화는 이들 모두 달성돼야 가능하다. 이는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전 과정이 종료된 이후에 건넬 수 있는 대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비핵화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북미 간 대화 국면에도 영변 핵 시설을 정상 가동하거나 함흥의 고체 미사일 공장을 확장하는 등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과거 행동에 비춰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높다. 종전됐으니 미군이 주둔할 이유가 없다며 미군 철수, 한미동맹 종결, 유엔사 해체 등을 비핵화의 새로운 조건으로 들고나올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세포적이다. 서두르면 북한의 전술에 말리고 비핵화는 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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