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대한민국 어디로 갈지 아찔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남북한이 평화를 구가한다는 이 시기에 태영호 공사란 존재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 의미하는 바가 더욱 크다. 김정은과 북한 정권 바로 보기를 넘어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태 공사는 베스트셀러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와 번영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격이 있는 나라다.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한국에 있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 같다."

그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은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번영에서 북한에 월등하게 앞서왔다. 태 공사를 비롯해 수많은 북한 인사들이 우리나라에 귀순했을 때 첫 일성이 "자유! 대한민국"이었다. 번영으로 일컬어진 경제 발전도 남한을 북한보다 우위에 서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자유와 번영이란 두 가지 기준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위기'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인간 본성을 토대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립된 자유, 이것이 지닌 의미와 가치는 숭고하다. '자유론'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나무에 비유해 자유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 헌법은 수많은 조항에서 자유를 표방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북한 체제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개념이 자유이기도 하다. 자유를 보수 우파 전유물로 판단해 빼고 지우려는 것은 아닌지 저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자유를 잃어버린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 될지 걱정이다.

남한과 북한이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운동 경기를 하는 등 겉으로는 평화스럽지만 안보에서는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북미 정상이 만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북한 비핵화에선 뚜렷한 진척이 없다. 한반도 평화의 전제조건인 북한 비핵화 합의에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비핵화 대신 종전선언이 엉뚱하게 이슈로 떠오르고, 한미 군사훈련이 취소되는 등 대북 유화책만 쏟아진다. 어느새 북한 비핵화는 정치 이슈로 변질했고, 칼자루는 김정은이 쥐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 남북·북미 화해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먹고사는 문제, 경제에서도 경고등이 켜진 지 한참 됐다. 고용지표가 외환 위기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여러 수치가 경제 위기를 방증하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계절적 요인 혹은 전(前)·전전 정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가 드러났지만 정책 수정은커녕 귀담아들으려는 자세조차 보이지 않는다. 경제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정부 리스크(risk)'가 경제 위기를 부르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마이 웨이만 고집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위기를 직시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총선, 대선, 지방선거 3연승에 언제까지 취해 있을 것인가. 대북·경제 정책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살피고 따져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때다. 이 정부가 임기를 마쳤을 때 대한민국이란 배가 어디에 있을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는 목소리를 경청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어느 한쪽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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