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조선시대 감로탱화' 펴낸 김남희 박사

"감로탱화는 의식세계를 진하게 담고 있는 당대 회화 백과사전"

1730년 제작, 운흥사 감로탱화.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1730년 제작, 운흥사 감로탱화.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김남희 박사. 김태형 기자 thkim21@msnet.co.kr 김남희 박사. 김태형 기자 thkim21@msnet.co.kr

조선시대 감로탱화/ 김남희 지음/ 계명대 출판부 펴냄

조선시대에 등장한 불교 그림 감로탱화(甘露幀畵)를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는 책이다. 감로탱화에는 어떤 그림이 있으며, 조선 사람들이 왜 감로탱을 그렸는지, 그림은 어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감로탱이 현대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살펴보고 있다.

◆기도한다는 것은 겸손을 안다는 것

지은이 김남희 박사(계명대 회화과)는 불자들은 조상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천도재(薦度齋)를 지낸다. 직계 조상이 아닌, 알지 못하는 고혼(孤魂)을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지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살아가는 동안 현실적 무탈을 기원하는 재도 올린다. 기도하는 행위야말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일 것이라고 말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제힘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사람이 가진 드물게 겸손한 태도다. 이는 조선시대 감로탱이 첨단과학의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경주 오봉산의 작은 암자에 자주 다녔다. 아버지는 높고 험한 곳에 자리한 암자에 한 철씩 살면서 전각을 하나씩 세웠다. 날마다 건축에 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절을 증축했다. 아버지는 절 짓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당신의 삶을 감당하셨다. 자라면서 나는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그림을 그렸고, 불교회화 공부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이토록 매달린 건 아버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교 윤리는 사람의 슬픔을 달래지 못했다

감로탱화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존하는 감로탱화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앞선 것은 현재 일본 나라(奈良) 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센지(藥仙寺) 감로탱화로 1589년에 제작된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감로탱화는 66점이다.

지은이는 "조선 중·후기에 감로탱화가 많이 나타난 것은 시대상과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참상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시체는 쌓여 가득하고 매장된 것은 얼마 없었다. 아비가 자식을 팔고 남편이 아내를 팔았으며, 계미년(1593) 봄에 이르러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고 시체를 쪼개 앞다퉈 물어뜯으며, 골육끼리도 또한 서로 죽이는 자도 있었으니…, 이경순 '기억으로서의 임진왜란과 불교'라고 할 정도로 비참했다. 그 지경이었지만 당시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 윤리는 무병장수와 사후명복을 바라는 사람의 갈망을 채워 줄 수 없었다. 죽어서 길바닥에 버려진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으로 이끈 것은 불교였고, 그 방법이 천도재였다. 그 천도재를 행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천도재에 필요한 의례용 그림이 감로탱화였다"고 설명한다.

◆당시대인의 고통과 바람을 담은 풍속화

서양의 그림은 '신(神)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불교 그림인 감로탱화는 '사람의 이야기, 그것도 서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 수행공덕을 행하는 비구, 아귀나 지옥고(地獄苦), 축생의 고통뿐만 아니라 감로비를 내려주는 번개신 등이 그려져 있다.

감로탱화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존재는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아귀(餓鬼)다. 아귀는 추하고 말랐으며, 입에서 불을 뿜고 목은 바늘처럼 가늘어 음식을 삼키지 못한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손톱과 어금니가 길어 그 모습이 무섭다. 아귀는 우리 자신이며, 조상이고, 구원 받아야 할 대상이다. 아귀는 생명수인 감로를 마심으로써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감로탱화의 하단부에 나타나는 장면은 인생의 고통, 재난, 인생무상 등 일상이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었지만, 이런 장면들 덕분에 후세를 사는 우리는 당시 사회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지은이는 그런 점에서 "감로탱화는 시대 현실과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진하게 담고 있는 당대의 회화 백과사전이다"고 말한다.

◆시대화이자 내 작품 세계를 확장하는 공부

지은이 김남희 박사는 신실한 불교 신자다. 이 책을 펴낸 것은 조선시대 감로탱화를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화가인 자신의 '작품세계 근간'을 확장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감로탱화는 한 편의 거대한 인생 지침서이자 조선시대 역사와 회화를 기록한 역사화(歷史畵)다. 내게는 감로탱화를 공부하는 과정이 우리 역사를 배우는 일인 동시에 신산한 인간사를 음미하는 일이며, 내 작품 세계를 기름지게 하는 과정이다"고 말한다.

책은 총 3장과 '보론'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조선시대 감로탱화의 의미와 출현 배경, 2장은 감로탱화에 나타난 시간성과 공간성, 3장은 조형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감로탱화의 전개 과정이다. '보론'에서는 감로탱화에 나타난 풍속화와 민화의 예술적 의의를 살펴본다.

▶감로탱화란…

감로탱화는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 의식에 사용된 조선시대 불화다. 이 불화는 수륙재와 연관이 깊은데,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식이다. 중국 양나라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로'는 하늘의 영액(靈液)으로 '달콤한 이슬'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천도재에서 굶주린 고혼의 배고픔과 갈증을 해소해주고 극락세계로 가도록 해주는 생명수를 말한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로 만들어 걸 수 있게 한 그림을 말한다.

감로탱화의 서사 구조는 불교의 우주관을 삼계(三界)로 집약한 상·중·하 삼단의 공간과 과거(전세), 현재(현세), 미래(내세)라는 삼세의 시간으로 구성돼 있다. 상단은 불·보살의 세계, 중단은 재단과 법회 장면, 하단은 윤회를 거듭해야 하는 중생의 세계와 고혼이 된 망령의 생전 모습, 지옥 등을 보여준다. 36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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