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출신 갤러리 대표 박민영 씨

미술을 보여줄게, 은반에서 온 '화랑 요정'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스케이팅 종목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부쩍 높아졌다. 특히 피겨 여왕 김연아에 이어 평창올림픽 여자 싱글 7위에 오른 최다빈 선수까지 우리들 마음속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갤러리가 밀집한 봉산문화거리에서 피겨 요정 출신이 화랑을 운영하고 있어 화제를 끌고 있다. 주인공은 갤러리사계 대표 박민영(48) 씨로 고교시절 전국 동계체전에서 피겨스케이팅 싱글 1위를 차지했던 은반 위의 예술가였다. 은퇴 후에는 20여 년간 피겨스케이팅 코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술을 전시하는 갤러리 대표자로 변신해 3년째 갤러리를 꾸려가고 있다. 제2의 인생으로 피겨스케이팅의 감성을 미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아직 새내기이지만 열정적으로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해마다 봉산도자기축제 참여 열정

"이건 백자 다기 세트입니다. 육각형 주전자에 깜찍한 찻잔이 예쁘죠. 이건 물컵입니다. 별자리를 겉면에 새겨 우주를 담았습니다. 이건 소반이에요. 쟁반을 들면 밑에 또 다른 그릇이 나타나요. 뭘 담아놓기 좋습니다."

분홍색 옷차림을 한 박민영 대표는 갤러리를 찾은 손님에게 전시된 생활식기를 설명하느라 분주하다. 설명을 마치면 손님에게 차 한잔을 내놓는 따스함도 엿보인다. 손님이 작품을 사든 안 사든 얼굴에는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다. 미술에 대한 지식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때 은반 위에서 화려한 춤을 추었던 요정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는 지난 10일부터 열리고 있는 봉산도자기축제에 참여해 전상근 작가 초대전을 갖고 있다. 99㎡ 소담한 갤러리 공간에는 달항아리, 컵, 쟁반, 다기 세트, 막걸리잔, 밥공기, 화병 등이 다소곳이 전시돼 있다. 계명대 출신으로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전상근 작가는 '식탐쟁이 그릇'이라는 백자 식기와 '밥볼'이라는 무광 식기를 만들고 있다. 전 작가는 분청기법을 이용한 자연스러운 질감을 물레성형과 판작업을 통한 섬세한 정형작업이 특징이다.

◆대박 전시회, 쪽박 전시회

"피겨스케이팅과 미술?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해요. 둘 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공통점이 있지요. 미술은 정적인 데 비해 피겨스케이팅은 동적이에요."

박 대표는 주로 추상화, 비구상화 중심으로 초대전, 기획전을 열고 있다. 전시기간은 보통 한 달 기준이다. 2015년 갤러리 개관전에서는 중견작가 5명의 단체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신진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많이 할애하고 있다.

갤러리 운영은 아직 아마추어지만 대박이 터진 전시회도 있다. 2016년 10월 봉산미술제에 참여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추상화가 최승윤 작가 초대전을 열었다. 최 작가의 전시회는 대구에서는 처음이었다. 놀랍게도 전시한 작품 25점이 모두 판매됐다. 갤러리 운영 1년 만에 첫 완판이었다. 이 밖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이상섭 작가, 설치미술가 신채영 작가, 도예가 심재용 작가 등 초대전도 성공적이었다. 반면 쪽박을 찬 웃지 못할 전시회 경험도 있다. 초대전 두 번 정도는 작품을 한 점도 판매하지 못했다. 그는 작가 보기에 민망스러워 작품을 자신이 한두 점 사준 적도 있다고 한다.

◆피겨 정상서 화랑으로 제2의 인생

"피겨스케이팅 기술 중 스핀 종류를 잘 구사했어요. 특히 앉아서 회전하는 시트핀은 일품이었지요."

그는 대구 토박이다. 종로초등학교 시절 처음에는 탁구를 했다. 4학년 때 아이스링크에 갈 기회가 있었다. 피겨스케이팅 복장을 하고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보였다. 그래서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스케이팅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갔다. 또 수업을 마치면 자정까지 스케이트장에서 놀았다. 그는 정화여고 3학년 때 마침내 빛을 발했다. 1988년 전국 동계체전에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고등부 1위에 우뚝 섰던 것. 그는 계명대 체육학과에서 피겨스케이팅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대구시민운동장 아이스링크에서 초교생을 대상으로 코치 생활을 했다. 그는 코치 생활 20여 년 만에 결심을 했다. 또 다른 큰 사회로 나가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머리에 떠오른 것은 화랑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그림을 보는 안목이 길러졌다. 미술을 하는 집안이라 갤러리를 자주 찾아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갤러리 운영 힘들지만 후회 안 해

"사계라는 상호는 씨앗을 뿌리면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고 갈무리하는 자연의 섭리를 담고 있어요. 갤러리 운영도 마찬가지죠. 기획, 작가 섭외, 전시, 판매 등 4박자가 맞아야 해요."

그는 처음에 갤러리 현실을 잘 모르고 입문했다. 초대전을 많이 여는 그에게는 작가 섭외부터 쉽지 않다. 어렵게 초대전을 열어도 최소한 작품 한두 점은 팔아야 갤러리 운영이 가능하다. 지금은 대관 수입도 거의 끊긴 상태다. 초대전은 갤러리 운영자가 기획부터 홍보, 팸플릿 제작, 판매까지 모두 맡는다. 갤러리 운영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전시회다. 하지만 그는 갤러리 입문을 후회하지 않는다. 피겨 선수 시절처럼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를 갖고 있다. 미술 작가와 소비자의 인적 네트워크 확대를 꾀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전시회를 시도하고 있다. 기획전에는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명제를 달았다. 내달에는 봄에 맞는 '5월의 시간'이란 명제로 단체전을 구상하고 있다.

사진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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