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관행이라는 이름의 적폐

정창룡 논설실장 정창룡 논설실장

뭔가 잘못이다 싶었다. 사면초가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감싸는 이유 말이다.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김 원장은 그저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에 나가 잘 먹고 잘 놀았던 인물일 따름이다. 그것도 여성 인턴을 대동하고서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에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김기식 금감원장 관련 문재인 대통령 입장문) 그런 인물이 애초 아니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국민 생각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입장문을 낸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이)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관행이라면 봐주고 싶다는 뜻을 에둘러 내비쳤다.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법이 아니라는 결론'에 대한 기대가 물씬 풍긴다.

위법 사실이 드러난다면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법 처리는 당연한 귀결이다. 위법행위를 저지른 자는 애초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 이런 경우라면 대통령이 할 역할은 없다.

김 원장을 둘러싸고 나오는 비리 의혹은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다. 청와대는 이 중 달랑 4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법 여부를 질의했다. 국회의원 재임 말기 남은 후원금으로 다른 의원을 후원하고 보좌직원 퇴직금을 준 사실과 피감기관의 돈을 받아 나선 세 차례 외유의 적절성 여부다. 선관위가 답해야 할 것도 있고 답하기 적절치 않은 것도 있다. 그저 선관위가 범법행위가 아니라고 하거나,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그냥 덮을 빌미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 원장의 일탈이 위법이든 아니든, 관행이든 아니든 국민들은 이미 그를 떠나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 드러났듯 국민들이 공직자에 대해 치는 그물망이 촘촘해졌다. 김 원장은 이미 '공직자의 도덕성'이란 그물망에 걸렸다. 오죽하면 늘 여권 입장에 섰던 정의당이 자진사퇴 촉구를 당론으로 정했을까. 그런데 대통령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국민 눈높이와 대통령의 눈높이가 달라도 한참 달라졌다.

지난해 5월 10일 대통령의 취임사를 되짚어보자. 그날 대통령은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고 다짐했다. 관행이란 그 사회의 공공성과 통한다. 사회적 제재가 따르게 마련이다. 해묵은 관행과의 단절이 필요한 이유다.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관행과의 결별을 이야기한 것은 다분히 이를 의식해서 일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 특활비의 청와대 상납은 관행이었다'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과거 권력자들을 재판대에 세운 것이 현 정부다.

이제 대통령이 그 관행의 그림자에 숨으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 하물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일이 다급해지자 청와대는 19대 20대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에 나선 사례를 캐보니 한국당이 더 많더라고 했다. 한국당 의원이 금감원장에 오른 것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더 철저히 검증하고 걸렀어야 할 터다.

대통령은 나아가 인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 했다. 이 호소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과감한 선택이 국민 눈높이에 맞거나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두고 보자고 한다. 대통령이 훌륭한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은 지우지 못하고, 김 원장은 버티고 있다. 버틸 만큼 버티다 물러나는 것이 공직계의 관행이다. 그 관행은 문 대통령이 없애겠다는 적폐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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