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암스테르담의 추억

내가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은 것은 헝가리의 한 대학병원에 클럽십(Clubship) 참여를 위한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일이다. 가는 도중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경유하게 되면서 목적지인 헝가리가 아닌 암스테르담이 유럽의 첫인상으로 남게 됐다.

유치원 다닐 적에 쌓고 놀았던 장난감 모형같이 생긴 집들, 따닥따닥 붙어있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운하를 따라 놓인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동화 속 주인공이 살 것같이 예뻤다. 해 질 녘 노을에 반사되는 집들 사이로 걸어 다니는 큰 키의 사람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내 키가 작은 편에 속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위로 올려다 봐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치즈 생산 및 섭취량이 어느 나라보다 월등한 네덜란드인들을 보며, 치즈를 많이 먹어 키가 큰 것이라는 나만의 가설에 확신을 가져보기도 했다. 잠깐 봤던 암스테르담을 뒤로하고 헝가리로 향하였지만, 좀처럼 그 풍경을 잊지 못해 유럽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도시를 들르곤 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출판할 나의 책에 수록할 사진 촬영을 위해 암스테르담에 한 달여간 머물렀다. 어느새 다섯 번째가 된 암스테르담 방문. 이제 이곳은 나의 첫사랑과 같이 여겨지는 도시가 되었으니, 이쯤이면 누군가에게 '나의 암스테르담'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이다. 향기로운 가을의 암스테르담. 도시를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운하 주변으로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었고, 집집마다 작은 화단에는 해바라기들이 집을 지키고 서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운하를 따라 부서지는 햇빛을 보니 10시간이 넘는 비행의 피로도, 항공사의 실수로 내 짐이 분실되는 사고에 격해진 나의 감정도 모두 누그러졌다.

암스테르담은 고향에 온 듯한 아늑한 기분이 들게 한다. 전통시장에서 식료품을 구입하고, 매일 아침 '렘브란트'의 이름을 딴 숙소 주변 공원에서 조깅을 하며, 그곳 주민들과 간단한 네덜란드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전의 방문에서는 그저 먹고 보고 즐기면 되었던 여행이었지만 이번 방문에는 사진 촬영이라는 과제가 있어서 그런지 항상 시간에 쫓기듯 부산을 떨었다. 그래도 매일 촬영이 끝나면 고흐와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러가기도 하고, 그 사이 친해진 이웃의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에서의 추억들을 회상하면 아련하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추억은 나와 대상 간의 공유하는 기억이 아닐까. 그 대상이 공간이든 사람이든, 유형이든 무형이든, '시간'이라는 양념과 함께 서로 섞여 교감하고 이야기를 만들면 멋진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여행가는 여행이란 두 번 되풀이 될 수 없는 체험이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그 고장을 방문하였을 때 참 맛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첫사랑을 마음 한 켠에 두고 회고하듯 추억의 암스테르담을 홀린 듯이 다시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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