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파워 인터뷰] 산수의 초상화가 배종호 작가

"간판쟁이로 그림 시작…이제 나만의 사실화 영역 구축"

홀로 공부해 독특한 사실화(事實畵)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배종호 작가. 산수의 초상화가로 불리는 배 작가는 ?#51080;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일수록 건강하다?#47732;서 ?#44148;강한 풍경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진짜 자연을 그리기 위해 사물들의 배후에 있는 그 무엇에 접근하려 노력해 왔다 홀로 공부해 독특한 사실화(事實畵)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배종호 작가. 산수의 초상화가로 불리는 배 작가는 ?#51080;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일수록 건강하다?#47732;서 ?#44148;강한 풍경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진짜 자연을 그리기 위해 사물들의 배후에 있는 그 무엇에 접근하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간판업소 견습생으로 취업

뛰어난 그림 글씨 실력 인정

5개월 만에 기술자 반열로

순수미술에 대한 미련 남아

1997년 첫 개인전 개최 성공

전시작 80% 넘게 현장 판매

살아 숨쉬는 생명체인 자연

사실 그대로 표현 작업 몰두

고독한 사실화가 길 걸을 것

"저는 사실화가(事實畵家)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사실(事實)의 길을 가면서 자연스레 독불장군 같은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계보나 형식주의도 내겐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계보나 형식주의가 저를 옭아맬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 혼자였으니까요. 제게는 스승도 제자도 없습니다. 저의 예술 작업은 내 삶과 예술 세계가 결코 둘이 아님을 내 그림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 그것이었습니다."

산수의 초상화가(肖像畵家)로 불리는 배종호(70) 작가는 한 번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보지 않은 독학 화가이다. 그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기까지 그림이라는 것이 미술대학을 졸업한 전공자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슴 한쪽에서 불타오르는 화가로서의 열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을 담은 그림은 쌓여만 갔다. 내 그림이 어느 수준인지, 전시회를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대체 아는 것이 없었다. 우연히 만난 옛 친구의 도움으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20여 년간 여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일곱 번째 개인전이 이달 19~25일(초대일시:21일 오후 7시) KBS 대구방송총국 갤러리 예정되어 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자랑하는 여느 작가보다 왕성한 활동이다. 그만큼 그림에 대한 뜨거움이 남달랐던 때문이리라.

"지금까지 인위적 화풍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서의 계곡과 산을 있는 그대로 그려왔습니다. 자연이라는 생명체가 미묘한 조화 속에서 실존하고 소멸하는 유무(有無)의 윤회를 그대로 고집스레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역부족이었죠. 하지만 내 자연, 내 산'바위'초목이 있는 계곡이 내 그림 속에 들어와서 그 질서를 유지하게 된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내가 장애인이라니!"

배 작가는 1949년 칠곡군 왜관에서 칠 남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6'25전쟁 이후 고등채소를 재배하는 앞서가는 농사꾼이었다. 일본에서 신기술을 들여와 수박, 참외, 토마토, 가지, 오이 등을 온상 재배해 팔았다. 이런 첨단 농업을 하는 사람은 칠곡 전체에서 두 명뿐이었고, 방학 때가 되면 대구농고 학생들이 현장 실습을 위해 배 작가의 집을 찾을 정도였다.

"온상재배는 요즘의 비닐하우스가 나오기 전에 이용한 첨단 농법입니다. 설 전에 가마니로 바람막이를 만들고, 땅에 거름을 넣으면 열기가 납니다. 이 열을 이용해 씨앗을 틔우고 재배하면 3, 4월쯤 봄 채소를 출하할 수 있게 됩니다."

덕분에 배 작가의 집은 전통적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이웃들보다 살림이 넉넉했고, 인접한 낙동강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선물했다.

"그 당시에는 다리가 없어 강 건넛마을 아이들이 장날을 맞아 왜관시장에 오려면 나룻배를 타고 와야 했습니다. 낙동강은 그야말로 최고의 놀이터였습니다. 물고기를 잡은 뒤, 집에서 가져온 양념을 풀어 매운탕 끓여 먹는 재미는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한 배 작가는 자신의 몸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데 자신의 몸은 정체된 듯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한쪽 팔이 비정상적으로 발육 부진이었고, 가슴에는 근육이 없었다.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열등감 때문인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었고, 성격도 비딱하고 까탈스러워졌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욕도 없었습니다."

◆사회 첫 출발, 간판 견습생

언제까지나 고향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10대 후반에 일거리를 찾아 대구로 나왔다. 중구 동문동 간판업소를 찾아갔다. 초'중학교 때 배 작가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소문이 났다.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와, "종호는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반드시 미대로 진학시켜야 합니다. 아주 훌륭한 화가가 될 겁니다"라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그 당시 간판에는 배경으로 주로 풍경화가 들어갔습니다. 그림과 글씨에 재주가 있어야 일류 간판 기술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림에 자신이 있었으니, 간판 기술을 배우면 어떨까 싶어 찾아간 것입니다."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먹여주고 재워줄 뿐, 기술자가 되기 전 3년 동안 월급 한 푼 없는 견습생 자리도 쉽지 않았다. 기술을 배워보겠다는 지원자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얼마나 성실할지, 수금한 돈을 들고 도망갈 녀석은 아닌지 등 관상 면접을 거쳐 겨우 견습생 자리를 얻었다. 그런데 배 작가의 견습생 생활은 5개월 만에 끝이 났다. 결근한 선배를 대신해 그린 간판이 사장님한테 인정을 받았고, 곧바로 정식 월급을 받는 기술자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여러 명이 공동 작업을 하는 간판 작업은 능력에 따라 하는 일이 정해집니다. 견습공, 일명 시다바리는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중간급 기술자는 각목과 함석으로 간판 틀을 만든 뒤 흰 페인트로 초벌칠을 하고, 최상급 기술자는 그 위에 글씨와 그림을 그려 간판을 완성합니다. 선배의 결근이 제 그림과 글씨 실력을 인정받는 기회가 된 셈이죠."

장애 때문에 군 복무가 면제된 배 작가는 6년 만에 '대구에서 알아주는 일류 간판 기술자'가 되었다. 직장을 몇 번 옮기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1975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공간미술', 내 꿈의 시작

그동안 성실하게 노력한 대가로 배 작가는 1980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구시 중구 만경관 건너편에 '공간미술'을 개업한 것이다.('공간미술'이라는 상호는 그 후 몇 번 사업장을 옮기면서도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구 최고의 간판 기술자로 소문이 난 만큼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비즈니스의 폭을 넓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등산 모임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별다른 레저 문화가 발전하지 않아 등산이 각광을 받던 시절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지리산을 집중적으로 등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등반을 시작하면 7, 8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등산은 인내의 시간입니다. 자연스레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요. 순수미술에 대한 아쉬움의 불꽃이 가슴 한쪽에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림 잘 그리는 간판쟁이'로 소문이 나 가끔씩 성화나 풍경화에 대한 주문이 오기도 했습니다."(비록 배 작가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딸은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제일 큰누님인 배정숙 바르나바 수녀는 양초공예 분야의 대가로 유명하다. 예술 가족인 셈이다)

"배 사장, 간판쟁이로 남기에는 그림 실력이 아깝데이! 이제 진짜 화가가 한번 돼봐야 않겠나." 고객과 동료들의 권유가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그림 그리기에 들어갔다. 그 후 생업으로서의 상업미술(간판)과 꿈'희망으로서의 순수미술이 배 작가의 삶과 함께하고 있다. 2013년 이후부터는 단골 고객을 대상으로 한 최소한의 광고 일만 하고, 거의 대부분 시간을 순수미술 작업에 쏟고 있다.

"유화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저는 20년 이상을 페인트로 간판 그림과 다양한 글자체의 글씨를 써왔습니다. 페인트는 쉽게 흘러내리기 때문에 작업이 쉽지 않죠. 어쩌면 이런 페인트의 특성이 저에게 특별한 훈련과 내공을 쌓는 기회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대로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화 그림이 너무 쉽게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그러지 않는데, 50대 시절만 하더라도 '이 세상의 누구와 그림에 대해 겨루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교만을 부리기도 했습니다."(웃음)

◆화가의 꿈을 이루다

배 작가의 첫 개인전은 1997년 대동은행 본점에서 열렸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지 10년을 훌쩍 지난 시점이다. 우연히 학교 다닐 때 미술부장을 했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화가가 아니라 시인이자 교사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한번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 일단 그림 한번 보자!"

배 작가가 10년 넘게 그려 쌓아 놓은 작품을 본 친구는 말했다.

"아니, 이런 그림을 가지고 지금까지 뭐 했노! 전시회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무조건 (개인전을) 하자."

1회 개인전은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살렸던 지리산 풍경과 계곡, 청도 학소대 계곡, 설악산 천불동 계곡 등이 중심이 되었다. 대부분 30호 이상 50호, 100호, 200호 등 대작이었다. 반응은 예상외로 폭발적이었다.

"첫 개인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작의 80% 이상이 현장에서 팔렸습니다. 반응이 어떨지 좀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자신감이 확 생겼습니다. 좀 더 당당하고 힘차게 내 예술 세계를 펼쳐야겠다는 용기를 주변에서 북돋아주었습니다."

이후 배 작가는 2, 3년에 한 번꼴로 개인전을 열었다.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넓어지고 깊어졌다. 2회 개인전은 기존의 계곡 그림에 소나무 작품을 더했고, 3, 4회 개인전에는 우포늪 작품이 추가되었다. 5, 6회 개인전은 '계곡+소나무+섶다리' 그림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경제 발전을 이루기 전 고향의 강을 가로질러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섶다리는 향수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달 중순 계획된 7회 개인전의 주제는 야생화이다. 1~6회 개인전에 빠지지 않았던 '돌허벅 작품'은 이번에 선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개인전이 주로 대작 위주였다면 이번 전시회는 10호짜리 야생화를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가장 인기 아이템이었던 돌허벅 작품을 제외시킨 것은, 돌허벅 작품에 야생화 그림이 위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데요. 야생화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감사, 그러나 쉬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인생을 개척해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배 작가는 그러나 "'이제 좀 쉬자'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라면서 "세계의 역사를 보면 나이 70대에 이르러 역사를 바꾼 인물들이 많은 만큼,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의 작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40, 50대 젊은 작가들조차 사실화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체력 때문이다. 세밀한 작업은 눈의 피로가 심하고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이 부분에 배 작가는 자신만의 특별한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탓에 건강에 각별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1980년 이후 헬스와 등산을 계속해 왔고, 요즘도 매일 1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겸손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는데요. 사실화의 경우도 제대로 된 노하우와 적합한 방법을 알게 되면 70세 이후 노년기에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종호 작가는?

-1949년 경북 칠곡 출생

-10대 후반 간판업계(광고) 취직

-독학으로 그림 공부

-1997년 제1회 개인전(대동은행 본점)

-2000년 제2회 개인전(대덕문화전당, 칠곡종합복지관)

-2004년 제3회 개인전(대덕문화전당)

-한국미술전업작가협회 회원

-2005년 현대미술 체코프라하전

-2005년 현대미술 한일작가 교류전, 아오야마 초대전

-2006년 제4회 개인전(호텔 인터불고)

-2008년 제5회 개인전(대백프라자 갤러리)

-2013년 제6회 개인전(KBS 대구방송총국 갤러리)

-2018년 제7회 개인전(KBS 대구방송총국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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