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한미동맹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

태평양전쟁 개전에 앞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 1941년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두 수뇌가 태평양 연안 어딘가에서 만나 꼬일 대로 꼬인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해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양자 간 견해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구는 일본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확보한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것이었고, 일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설사 회담이 열렸다 해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고노에의 협상안에는 중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지금의 베트남) 북부에서 일본군의 철수, 독일'이탈리아'일본 간의 삼국동맹에서 탈퇴, 동남아시아로의 남진(南進) 등 미국이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현안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회담에서 고노에는 구체적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채 막연히 루스벨트에게 중일전쟁이 해결되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하려 했을 뿐이다. 게다가 고노에는 장제스(蔣介石)에게 항일전쟁의 중지를 권유해달라고 루스벨트에게 요구하려고도 했다. 한마디로 침략 전쟁이 낳은 '현상 변경'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런 회담을 미국은 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들춰보는 이유는 북핵 문제 해결이 25년 동안이나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지기 직전까지 온 과정과 너무나 닮아서다. 일본이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이유도 실무자 간 교섭에서 전혀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핵 협상도 마찬가지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시작으로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모두 핵 동결까지는 갔지만 핵 폐기에는 이르지 못했다. 북한은 막대한 반대급부만 챙기고 핵 폐기를 위한 검증은 시간만 질질 끌다 끝내 거부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이것이 5월 북미 정상회담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김정은이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대북특사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한다.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해체'(CVID)이다. 그 내용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핵과 관련된 모든 것, 핵무기'핵시설'핵물질'핵프로그램의 폐기이다. 북한에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를 수용할까? 예단은 금물이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북미 회담에서 김정은이 미국의 말을 듣는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 것이냐이다. 북한의 핵 폐기 여부보다 우리가 더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야 할 문제다. 그 답은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김정은의 말에 있다.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폐기'라는 뜻이고, '체제 안전 보장'은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이다. 우리는 이를 수용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절대 안 된다'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폐기는 얘기만 나와도 남한은 둘로 쪼개질 것이다. 북한의 의도대로 가는 것이다.

평화협정의 '평화'란 단어에 환상을 가져서도 안 된다. 6자 회담 차석대표로 있으면서 북핵 협상의 실패를 지켜본 이용준 전 이탈리아 대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평화협정은 무력 대결 종식의 결과로 형성된 실재하는 평화를 문서로 작성한 것일 뿐, 평화협정이 무력 대치 상태를 종식시키거나 평화를 창조할 수는 없다. 평화협정이 없어서 한반도에 군사적 대치 상황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게임의 종말, 북핵 협상 20년의 허상과 진실 그리고 그 이후) 정확하고 냉철한 지적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양날의 칼이다. 잘못하면 우리가 베일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한미동맹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국민적 결의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 내 '자주파'는 물론 트럼프도 '딴생각'을 못한다.

AD

관련기사

최신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