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바다, 그리고 동백 거제 지심도

한 송이 동백꽃에 사랑이 물든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거제 지심도. 붉게 핀 동백꽃 사이로 장승포항과 지심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보인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거제 지심도. 붉게 핀 동백꽃 사이로 장승포항과 지심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보인다.
활주로를 만들려다 계획이 변경되면서 남은 넓은 초지에는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조형물과 전망대 등이 마련돼 있다. 활주로를 만들려다 계획이 변경되면서 남은 넓은 초지에는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조형물과 전망대 등이 마련돼 있다.
한려해상공원 특유의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가파른 해안절벽. 한려해상공원 특유의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가파른 해안절벽.
장승포항에서 배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지심도.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부지런히 동백꽃을 찾아 나선다. 장승포항에서 배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지심도.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부지런히 동백꽃을 찾아 나선다.

올 듯 말 듯 봄이 언저리에서 서성거린다. 겨울옷이 덥게 느껴지는 포근한 낮 기온에 '이제 유난히 추웠던 겨울과는 작별할 시간인가 보다' 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쌩한 얼굴로 훅하니 치고 들어오는 꽃샘추위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봄의 초입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성화를 부렸던 겨울 맹추위의 기세도 어쨌든 세월의 힘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시곗바늘은 쉼 없이 돌아가고, 봄은 바람결에 제 소식을 실어 보내며 한 발짝 한 발짝 우릴 향해 다가오고 있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새로운 시작이고, 생명이 탄생하는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설렘으로 흥분되는 시기다. 겨우내 움츠리고 에너지를 축적했던 나무들도 이제 꽃을 피워내며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앙상하게 메말랐던 가지에는 조금씩 물이 차오르고 앙증맞은 꽃망울도 곧 예쁜 꽃잎을 펼쳐낼 것이다.

이제 봄 마중에 나서야 할 때다. 겨우내 헐벗은 나무와 누렇게 말라버린 잎들에 익숙했던 풍경과 작별하고 생동하는 봄기운을 느껴보고 싶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나섰다. 추위를 이겨내고 봄의 향기를 이끌어줄 동백꽃을 찾아….

◇지는 순간, 붉은 심장 툭 떨어뜨리는 동백

동백(冬柏).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겨울나무라는 뜻이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남들보다 더 빨리, 활짝 피어나는 꽃이 바로 동백이다. 흔히 겨울꽃으로 알려 져 있고, 이르면 12월부터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반도 대부분의 동백나무는 2월부터 4월 말까지, 그러니까 이른 봄부터 시작해 봄의 절정까지 꽃이 핀다. 너무 추운 날씨에는 잠시 꽃이 폈다가도 그대로 얼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묘한 것은 '동백'은 한자 이름이지만 중국도, 일본도 이렇게 부르진 않는다. 우리나라 옛 문헌을 비롯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산다(山茶) 또는 산다화라는 이름으로 주로 기록돼 있다. 차나무과라는 의미다.

이쯤 되니 '과연 동백은 겨울나무일까, 봄의 나무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아무래도 매화와 더불어 한겨울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눈 속, 가장 앞장서 씩씩하게 꽃을 피워내는 몇 안 되는 꽃이다 보니 수많은 봄꽃과 차별화해 겨울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동백나무는 봄에 핀다 해서 춘백(春柏), 붉게 달린 꽃의 모습을 그려 학단(鶴丹), 붉은 꽃잎이 이제 막 단장을 마친 여인의 붉은 입술을 닮았다고 해서 여심화(女心花), 겨울을 견디는 꽃이라는 내동화(耐冬花), 바닷가나 섬 지역에서 주로 핀다고 해서 해홍화(海紅花) 등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동백꽃이 이른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임에는 틀림없다.

동백꽃의 또 하나 특징은 꽃이 질 때 상하거나 시들지 않고 송이째 땅에 떨어진다는 점이다. 화려하게 빛나던 대부분의 꽃들은 마르거나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작별을 고한다. 하지만 동백은 한창 때의 싱그러운 모습 그대로 툭하고 떨어진다. 마치 자신의 부끄러운 얼굴은 기어이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고고한 모습이다. 떨어진 꽃은 차가운 땅 위에서도 일주일이나 버텨내기 때문에 수북하게 모인 꽃들이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혹자는 "동백은 세 번 핀다"고 표현했다. 나무 위에서 한 번, 떨어져서 또 한 번, 그리고 강렬한 빛깔로 마음속에 한 번 더 핀다는 것이다.

◇마음 心 닮은 지심도, 동백 가득한 동백섬

소담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동백꽃을 찾아 남도로 떠났다. 거제에 속한 작은 부속 도서인 지심도는 면적이 0.338㎢, 섬 둘레는 3.5㎞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하늘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 자를 닮아 지심도라 불리는 이곳은, 전체 식생의 절반 이상을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어 예로부터 '동백섬'이라 불리기도 했다.

지심도로 향하기 위해서는 거제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15분 남짓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다. 장승포항에 위치한 동백섬 지심도 터미널에서 평일 7차례, 동백꽃이 피는 성수기 주말에는 수시로 증편돼 하루 20차례가량 여객선이 출발한다. 지심도에 닿자 꽃내음에 이끌린 듯 관광객들의 발길이 서둘러 오르막을 향한다.

지심도의 매력은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섬이라는 데 있다. 흔히 보는 중간키 정도의 동백나무가 아니라 수령이 수백 년 이상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유인도 중 자연 생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섬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는 이곳이 본래 국방부 땅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난한 주민들이 땔감이 필요해도 함부로 나무를 벨 수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원시림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수백 년 이 땅에 뿌리 내린 동백나무와, 이를 감상하는 지금의 관광객들에겐 국방부가 섬의 주인이었다는 게 커다란 행운이다.

지심도는 천천히 걸어도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지그재그 오르막 길을 오르자 햇살 바른 양지에 붉게 타는 동백나무가 먼저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곳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과 식당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기점으로 오른쪽, 왼쪽 코스를 선택해 섬을 한 바퀴 걸을 수 있게 트레킹 코스가 마련돼 있다.

◇올해 추위 때문에 꽃피는 시기 조금 늦어

먼저 섬의 오른편 '마끝'을 향했다. 최근 데크전망대가 설치된 마끝은 낚시꾼들에겐 소문난 명소로,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이곳에서 다시 빠져나와 섬의 왼편으로 길을 잡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담한 공터가 나타난다. 예전 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한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을 곳이지만, 지금은 교실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집 한 채와 황량한 운동장뿐이다.

다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니 넓은 초지가 나타났다. 지도에 '활주로'라고 표기된 위치다. 지심도에서 가장 높은 이곳에서는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악회원들이 이곳에 자리를 깔고 도시락으로 식사도 하고, 연인과 함께 온 이들이 하트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본격적인 동백꽃 산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점점 숲이 울창해지며 곳곳에 붉은 동백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2월 하순부터 3월 중순 가장 싱싱하게 활짝 핀 동백꽃을 만날 수 있지만 올해는 추위가 워낙 기승을 부리다 보니 꽃피는 시기가 조금 늦어졌다"고 했다. 더구나 4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동백꽃의 특성상 꽃이 수북한 시기와 별로 없는 시기가 엇갈려 '복불복'인 측면도 있다고 한다. 올해는 워낙 날씨가 변덕스럽다 보니 동백꽃 핀 자리도 편차가 크다. 특히 지심도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백미라 불리는 '동백 터널'은 초록색 짙은 잎사귀만 가득하다. 빽빽이 들어선 동백나무는 햇빛이 스미는 것조차 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개를 한껏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면 햇빛이 닿는 동백터널 제일 상층부에는 붉은 기운이 어른어른 보인다. 한 송이 한 송이 동백꽃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마음도 붉게 물들어간다.

섬의 왼쪽 끝은 망루다. 이곳에서는 한려해상공원 특유의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가파른 해안 절벽과 검푸른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직 동백터널의 장관을 이루기엔 조금 이른 시기, 봄을 갈구하며 먼 길을 찾아온 꽃놀이객의 아쉬움을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흘려보낸다. 대신 드문드문 피어난 동백꽃이 얼마나 애절히 아름다운지, 숲길을 걸으며 듣는 동박새, 직박구리의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슴에 담으며 마음을 잠시 쉴 수 있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알고보면 쓸데있는 지심도 여행 팁

★지심도는 낚시꾼들에게 소문난 곳이다. 동섬, 찬물고랑, 노랑바위, 샛끝벌여 등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포인트가 즐비하다. 감성돔, 도다리, 볼락, 농어, 방어 등이 사시사철 낚시꾼들의 발길을 유혹하며, 봄이면 학꽁치가 많이 잡힌다.

★거제도는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한 섬이라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시간이 촉박할 수 있다. 장승포항 여객터미널에서는 외도로 가거나 해금강 일대를 돌아보는 유람선이 운항한다. 해금강 일대의 해변 비경인 신선대, 바람의 언덕 등을 돌아봐도 좋으며, 거제 최고의 명소인 학동몽돌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발끝을 간지럽히는 바닷물을 느껴봐도 좋다.

★거제 구조라마을의 매화는 봄이면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을 좀 더 만끽하고 싶다면 폐교된 구조라초등학교 교정에 호젓하게 핀 '춘당매'를 즐겨도 좋다.

★거제의 봄은 입으로도 느낄 수 있다. 봄에만 만날 수 있는 도다리쑥국과 제철 물회가 별미다. 갓 잡아 올린 도다리에 봄 쑥을 넣어 끓인 도다리쑥국은 담백하고도 향긋한 맛을 낸다.

AD

관련기사

최신기사

기획 & 시리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