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마음의 감기 '우울증

울컥 울컥 마음에 비가 내린다

장성만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장성만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울증은 현대인들에게 흔한 정신 질환이다. 감기만큼이나 낯설지 않은 질환이라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린다. 직장, 학교, 가족, 친구 등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나 실적, 성적 등 목표 달성과 관련한 압박감 등이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다.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목숨을 위협할 만큼 심한 상태에 이르기도 하기 때문에 쉽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상태가 의심된다면 우울증을 앓는 게 맞는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의 구체적, 일반적 사례들

60대 A씨는 요즘 들어 부쩍 기운이 없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머리는 자주 어지럽고, 밥을 먹으면 소화도 안 되는 것 같다. 체중도 많이 줄었다. 아무래도 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인근 내과에 가서 심장검사, 내시경 검사도 하고 CT도 찍었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혹시 중풍이 오지 않았나 싶어 MRI도 찍어 봤으나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밥은 잘 안 먹히고,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가슴은 계속 뛰었다. 용하다는 병원과 한의원 여러 곳을 다녔으나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대학병원에 들러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곳에선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신경성인 것 같다며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권유했다.

70대 C씨는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 고민이다. 건망증이 너무 심한 탓이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려 해도 정말로 치매라는 진단을 받으면 어쩌나 싶어 두렵다. 2, 3개월 전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다. 혼자서 친구들도 잘 만나러 다녔다. 볼일도 잊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다. 약속은 자주 잊고, 물건을 어디 뒀는지 까먹고 찾아 헤매는 건 일상이 돼버렸다. 이것저것 걱정도 많다. 잠을 잘 못 자는 데다 밥맛도 별로 없다. 결국 자녀들이 C씨를 모시고 인근 병원에 가서 치매 검사를 받고 MRI까지 찍었다. 치매가 의심된다며 약을 처방받았지만 별로 나아지는 것은 없는 상태다.

중학교 2학년 B군은 요즘 들어 거의 매일 늦잠을 잘 뿐 아니라 학교도 잘 가지 않으려 한다. 이런 문제로 부모님과 자주 다투기 일쑤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학교에선 B군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자주 보인다고 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 통에 부모가 보약을 지어 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별로 나아지진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경우들은 실제 우울증의 흔한 사례들이다. 우울증의 정식 진단명은 '주요우울장애'. 우울감, 의욕 저하, 기운 저하, 식욕 부진, 수면 장애, 집중력 장애, 정신운동 지체나 초조, 무가치함, 자살사고 중 5가지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할 때 우울증을 앓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증상들로 인해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을 받는 경우여야 한다.

◆가면 뒤에 가려진 질환, 우울증 진단

기준만 따져보면 우울증인지 판단하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상당수 환자들이 처음부터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지 못한 채 내과나 신경과 등 여러 병원을 방문하거나, 용하다는 한의원부터 찾는다. 심지어 몸에 좋다는 민간요법까지 받은 뒤 병원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환자들이 자신의 기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울한 상태라는 걸 외부에 알리지 않는 탓이 크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이 그런 기분을 알아채기 전까지 신체적인 증상 등 기분 이외의 문제만 더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제때 우울증 진단을 받지 못하고, 결국엔 치료 기간만 훨씬 더 길어지게 된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는 환자들 대부분은 우울감과 함께 기운 저하나 식욕 부진, 불면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흔히 같이 동반된다. 또 불안 증상을 수반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밥을 못 먹겠다' '밥을 못 먹으니 기운이 없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 '가슴이 눌리는 것 같다' '자꾸 가슴이 뛴다' '어지럽다'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저리다' '(여기저기 온몸이) 아프다' 등과 같이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곤 한다.

이 때문에 관련 과에 가서 검사를 받더라도 결국은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는 마치 건강염려증과도 유사한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울증이 신체질환의 가면을 쓰고 위장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가면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결국 환자의 치료에 성공하는 경우는 항우울제처럼 우울증을 개선하는 약물을 복용한 후다.

가면성 우울증은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니다. 청소년은 아직 인지적 발달 상태가 완성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울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우울하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앞에서 든 사례처럼 우울감 대신 짜증이나 폭력, 일탈행위, 학교 거부증과 같은 행동 문제로 우울감을 표현하게 된다.

노인의 경우는 또 다르다. 우울증을 앓는 경우 주의력과 집중력 저하, 그리고 정신운동 지체와 같은 인지적인 증상도 흔히 나타난다. 노인들은 우울증이 발생하면 기억력 저하와 같은 인지적인 문제가 잘 일어난다.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울증을 치매로 진단할 수도 있다. 마치 치매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치매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명 '가성치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성치매는 노인 우울증의 대표적인 가면성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운이 없고, 잠자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신경성'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식욕 부진, 심계항진, 호흡 곤란 등과 같은 신체 증상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 노인의 경우도 평소와는 달리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진다면 우선 치매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우울증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아보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도움말 장성만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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