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천천히 오세요'

내일 오후면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빠진다. 떨어져 살던 가족이 다시 얼굴을 맞대는, 재회의 시간을 앞두어서다. 귀성길이 막혀 고생해도 가슴은 설레고, 운전대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한국인에게 무조건 반사의 영역인 까닭이다.

365일이 명절을 앞둔 심정과 같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 일상은 그렇지 않다. 저마다 삶의 조건과 처지가 다르지만 늘 시간과 성과에 쫓기는 건 같다. 매일 서로 부대끼며 갈등하고 싸운다.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밀쳐내는 일도 다반사다. 미세먼지처럼 반칙과 편법은 이미 우리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직장과 학교, 가정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상승 곡선만이 지상과제다. 이런 강박감의 틈바구니에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급기야 최고'최선으로 둔갑하고 세상을 지배한다. 조급함과 각박한 세태가 만든 결과다. 성취하려는 노력과 의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 따져보면 답이 궁해진다.

어느 배달 서비스 회사가 택배 배송기사들에게 물었다. 고객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나 행동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57.3%가 답했다. '천천히 오세요'라고.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조심해서 오라는 말이다. 이 한마디가 택배기사들 마음을 움직인다. '고맙다'는 인사치레보다, 음료수를 챙겨주는 적극적인 친절보다 '천천히'라는 말의 울림이 더 크다. 지극히 평범한 말에 이런 힘이 있다니 놀랍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감정의 골을 메우고 서로를 연결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천천히 와도 괜찮다'는 말이 그만큼 듣기 힘들다는 뜻이다.

1960년, 2천500만의 한국인이 저마다 손에 쥔 돈은 고작 158달러였다. 지금은 3만달러에 가깝다. 돈의 부피가 달라지는 동안 거꾸로 인정은 줄어들고, 돈과 권력의 얼굴은 더 두꺼워졌다. 정치가 분열하는 동안 세태는 물 먹은 가죽처럼 딱딱해지고 모질어졌다. 더 슬픈 일은 생계가 달린 아파트 경비 자리가 사라져도, 좌절한 청년들이 암호화폐에 매달려도 뾰족한 대안도 문제를 풀 능력도 없다는 점이다. 간간이 '함께 살자'는 선의의 외침도 '내가 먼저'라는 고함 앞에서는 그저 위태롭다.

미국 유명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파리드 자카리아가 평창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WP)에 칼럼을 실었다. '한국에 금메달을 주라'(Give South Korea a gold medal)는 제목의 칼럼이다. 그는 한국이 역경을 딛고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결정적인 동력을 분석하면서 '한국의 성공은 매우 인상적'이라고 썼다.

이 칼럼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한국이 현재 서 있는 위치가 아니라 출발점이 어디인가를 따져본다면 한국은 가장 성공한 국가'라는 대목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가난했고, 자원도 빈약했으며 더욱이 북한의 위협은 일상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올바르게 정책 결정을 했고, 교육과 인프라 투자, 자유로운 시장과 교역을 옹호했다. 이것이 한국의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국가나 사회는 없다. 그러나 이 칼럼의 요점은 '한국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중단없이 앞으로 나아갔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정치, 경제, 사회 등 각종 도전과 위기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면서도 조금씩 함께 풀어나간다면 별로 어렵지 않다. 소통과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이라면 근심할 것도 없다.

그러나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관용과 배려가 없는 사회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치와 경제가 불화의 씨앗만 뿌리고, 돈과 탐욕의 그릇만 넓혀간다면 미래는 어둡다. 이제 정치는 국민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전지전능하지 않다'고. 국민도 정치를 향해 주문해야 한다. '천천히 오라'고. 적폐든 양극화든 남북대화든 문제 해결 의지보다 독선과 탐욕이 앞선다면 답은 뻔하다. 그런 한국이 금메달 받을 자격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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