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이탈리아 문화여행기…『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완성도 좇다 말년에 탈진, 근대 작가 에피소드 소개

이탈리아 내 바티칸공국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역작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는 이 대작을 그리다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탈진했다. 이탈리아 내 바티칸공국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역작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는 이 대작을 그리다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탈진했다.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펴냄

"항상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이제 다시는 갈 일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이 들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면 잊기 어려운 추억이 되어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나라."

이 책 서문 중 일부다. 지은이가 이 책을 펴낸 동기는 미켈란젤로에서 마리노 마리니, 단테에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까지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탐색하기 위함이다. 그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고, 그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여행 에세이로 이 책을 펴냈다. 이미 이탈리아 한 작가의 삶을 조명한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카라바조, 단테, 미켈란젤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등 이탈리아의 여러 작가와 예술가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써왔다.

이번 저서는 '근대 인문학의 황혼'이라고 할 법한 시대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독서애호가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1993년 '나의 서양미술 순례' 덕분이다. 지금은 '미술 기행'이라는 말이 흔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인문학적인 에세이면서 여행기이며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가 섞인 이런 형태의 책은 매우 파격적이고 신선한 것이었다.

25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 이어 이제 60대가 된 저자가 다시 이탈리아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난 소회를 기록하고 있다. 25년 사이에 달라진 세계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지만, 저자가 '늙음'에 대해 사유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고통의 순간이 계속될 것 같았던 비관적인 청년의 관점이 인간의 역사 전체가 그와 비슷한 고통의 반복으로 이뤄진다는 관점으로 확장된다. 더불어 예술작품을 인간이 유한한 시간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역사 속에 기어코 남기는 흔적으로서 읽어내는 것도 이채롭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다뤘던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프리모 레미,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외에 모딜리아니, 샤임 수틴,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 주세페 스칼라리니, 오기와라 로쿠잔, 사에키 유조, 마리오 시로니 등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각각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이지만 각자 그 시대와 장소에서 치열하게 악전고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라바조는 반종교개혁의 시대에 종교적으로는 정통파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혁명가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본성을 가차없이 그려냈으며, 모란디는 파시즘의 시대에 고전성, 고요함, 조화라는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반파시즘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마리니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 인간의 승리가 아닌 패배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미켈란젤로는 예술적인 대작(바티칸공국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인 '최후의 심판')의 완성을 추구했으나 말년에는 탈진해버렸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탈리아 근대 작가들과 작품들이 저자가 여행하면서 겪은 여러 에피소드들과 합쳐져 생생한 이탈리아 문화여행기로 읽힌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탈리아 도시 곳곳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봤던 인간을 향한 마음의 기록을 이 책에 담았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말한다. "'나'의 주관적인 프리즘을 통해 본 이미지며, 이탈리아를 얘기함과 동시에 '나'를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편 저자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케이자이 대학 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34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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