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강의 LIKE A MOVIE] 노장 감독 우디 앨런식 우아한 막장 드라마 '원더 휠'

한 남자 두고 계모와 의붓딸 삼각관계

*해시태그: #우디앨런 #불륜 #사랑과전쟁 #막장드라마

*명대사: '이건 현실이 아니야, 나는 웨이트리스 역을 연기하고 있는 거야.'

*줄거리: 뉴욕, 코니아일랜드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지니(케이트 윈슬렛)는 해변의 안전요원 미키(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밀애를 나누는 사이다. 한때 연극배우 이력을 가지고 있는 지니는 남편이 있지만 언젠가 미키와 둘이 코니아일랜드를 떠나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로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남편이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마피아에 쫓겨 지니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미키와 삼각관계가 된다. 지니는 캐롤라이나를 질투하면서 점점 히스테릭해져 가고, 미키도 남편도 그런 그녀를 감당할 수가 없다.

평이 좋건 나쁘건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 나의 경우, 우디 앨런 영화가 그러하다. 때로는 걸작으로 때로는 범작 혹은 졸작으로, 우디 앨런의 영화는 매년 한 편씩 어떻게든 돌아온다. 올해 84세인 노장 감독 우디 앨런은 30대 중반에 감독으로 데뷔한 후 모범 시민이 납세하듯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원더 휠'은 그의 48번째 연출작으로 한동안 유럽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오랜만에 그의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와 촬영한 작품으로 더욱 의미가 깊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명언처럼 비극과 희극의 경계는 우디 앨런의 오랜 화두이다. 그중 '원더 휠'은 우디 앨런 영화 중 인생의 허무함이 짙게 깔린 작품으로 가장 비극에 가까운 본질을 띠고 있다. 영화는 미키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서술하는 연극적 방식을 차용한다. 이는 극작가 브레히트가 고안한 소외효과로 관객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다. 즉 사회자가 나타나서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깨뜨려 비판적으로 연극(영화)을 볼 수 있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이 같은 서술자가 종종 나타나는데, 그중 '원더 휠'은 우디 앨런식 소외효과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요컨대 비극적인 지니의 상황이 미키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과정에서 비극적 요소는 상쇄되고 웃프게 희화화되는 것이다.

사건의 배경은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한 휴양지 코니아일랜드다. 지니는 한때 연극배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지금은 이혼 뒤 새 남편 험티(짐 벨루시)를 만나 작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푼돈을 모아 사는 비루한 신세다. 불 지르기가 취미인 아들은 문제만 일으키고,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은 꼴도 보기 싫다. 그런 지니에게 나타난 잘생긴 구조대원 미키는 말 그대로 지니를 '구조'해준다. 지니가 미키와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 두 사람의 밀회가 깊어지는 이 시점에 험티와 전 부인 사이의 딸 캐롤라이나가 나타난다. 이쯤 돼서, 우디 앨런 팬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불길한 징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캐롤라이나의 등장으로 잠시 평화로워 보였던 지니의 삶에 숨어 있던 균열이 드러난다. 미키는 캐롤라이나에게 반하고, 한 남자를 두고 지니와 의붓딸 캐롤라이나의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저 정도면 괜찮고 행복한 삶 아닐까' 싶어도 우디 앨런의 여주인공들은 평범한 현실로는 만족할 수 없다. '블루 재스민'에서는 케이트 블란쳇이, '원더 휠'에서는 케이트 윈슬렛이 욕망을 채울 수 없는 현실에 고달파하는 여인으로 분한다. 그들은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속 블랑쉬처럼 환상을 좇아가다가 끝내 현실과 아귀를 맞추지 못하고 분열하고 만다. 애증과 날 선 조롱이 교차하는 케이트 윈슬렛의 1인 연기는 모노드라마 같은 인상을 준다. 영화는 플롯뿐 아니라 지니의 대사도 마찬가지로 연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건 내 삶이 아니야. 나는 웨이트리스 역을 연기하고 있는 거야"라며 웨이트리스도 연극에서 맡은 하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잃고 혼자 남은 지니의 마지막 클로즈업은 폭풍의 꼬리처럼 스산하다. 뼈아픈 좌절을 경험했던 이라면 모두 공감하리라.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라는 현실 부정의 몸부림을.

지니도 이 모든 것이 허무한 불장난이었다는 걸 안다. 사랑에 목말라 허우적대는 그녀를 구해줄 이는 아무도 없다.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고 코니아일랜드의 회전목마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계속 도는 쳇바퀴처럼 삶도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미키는 이 모든 과정을 불구경하듯 덤덤한 자세로 서술한다. 욕망은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또한 삶을 황폐하게 하거나 파괴하기도 한다. 어느새 지니는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시들어가는 꽃처럼 서글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참한 지니의 처지와는 달리 영화의 배경인 1950년 코니아일랜드는 형형색색 화려하고 활기가 넘칠 뿐이다.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비주얼은 이탈리아의 거장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트라로의 손에서 탄생되었다. '카페 소사이어티' 이후 우디 앨런 감독과는 두 번째 작업이다.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비토리오 스트라로는 스스로 고안한 특수 촬영 비율, 현상법, 인물 감정에 대비한 컬러 이론을 가지고 있을 만큼 미장센에 관해서라면 타협이 없다. 그와 작업하기로 했다면, 그만의 룰에 따라 작업해야 함은 물론이고, 촬영뿐만 아니라 미술, 의상까지도 그의 까다로운 지시를 통과해야 한다. 덕분에 '원더 휠'은 우디 앨런 영화 중 미술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화가 되었다. 지니의 감정 흐름을 대변하듯 교차되는 붉은빛과 푸른빛의 틴트 넘버는 그가 만든 컬러 이론의 대표적 컬러이다. 치정극이 펼쳐지는 막장드라마도 비토리오 스트라로의 섬세한 영상미에 의해 우아함을 입었다. 그 와중에 요즘 우디 앨런의 신변이야말로 막장드라마처럼 껄끄럽다. 수양딸 성폭행 논란으로 동료 배우들뿐만 아니라 대중들까지 그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영화의 복선처럼 인생의 전반부에 지은 업보가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돌아온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사랑이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게 되는 승산 없는 게임이다. 영화는 담담히 이들의 상처를 응시한다. 사랑이 식어버린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격정적으로 분노하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원더 휠'(회전목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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