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의 깊은 뿌리 파헤치는 영화 '1급기밀'

리틀빅픽처스 제공 리틀빅픽처스 제공

야전 생활만 하던 육군 중령 박대익(김상경 분)은 국방부 항공부품구매과장으로 인사발령이 난다. 출세 가도가 눈앞에 보인다. 서울로 떠나기 전 사단장은 "야전에서처럼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지식할 만큼 투철한 군인정신과 애국심의 소유자인 박 중령에게 곧 고난 길이 열린다.

'1급기밀'은 군내 비리를 파악하게 된 박 중령이 진상을 추적하고 세상에 알리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1997년 국방부 조달본부 군무원의 전투기 부품 납품비리 폭로, 2002년 공군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 2009년 해군 납품비리 폭로 등 실제 외부로 드러난 군내 비리 사건들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영화는 건조하고 묵직하다. 흔한 유머도, 화려한 편집이나 카메라 워크도 없다. 분노와 불안이 섞인 박 중령의 표정에 가끔 카메라를 들이댈 뿐이다. 진실이 밝혀진 뒤의 카타르시스보다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의 고통이 관객을 압도한다. 방산비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말하려는 듯한 태도다.

납품업무를 처리하던 박 중령은 외국 항공기 부품업체 에어스타가 군으로부터 특혜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국내 업체 제품은 성능검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공군 대위 강영우(정일우)가 찾아와 "파일럿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며 제대로 된 검사를 요구하지만, 박 중령은 관행대로 일한다. 그러던 중 강 대위가 비행 중 부품결함에 의한 사고로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군수본부 외자부장 천 장군(최무성)과 그의 오른팔 남 대령(최귀화)은 인사기록까지 조작해가며 사고를 강 대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간다. 에어스타의 로비스트 캐서린(유선)과 군 수뇌부의 은밀한 뒷거래까지 알게 된 박 중령은 탐사보도 전문기자 김정숙(김옥빈)과 함께 비리를 폭로하기로 한다.

영화는 내부고발을 결심하기까지의 갈등,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집단의 치졸한 방해 공작, 그로 인해 내부고발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겪어야 하는 고난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박 중령과 김정숙은 1급 군사기밀 누설죄로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박 중령은 배신자로 찍혀 집단 따돌림도 당한다. 천 장군은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해 폭로를 막고 박 중령을 체육부대로 보내버린다. 박 중령의 입을 막는 데 군 검찰까지 동원된다.

뒷돈을 나누며 비리를 공모하는 군 수뇌부 인사들은 '식구'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리며 건전한 비판을 무력화한다. "네가 처음이 아니다"라는 천 장군의 비아냥은 비리 관행의 뿌리가 생각보다 훨씬 깊음을 보여준다.

'1급기밀'은 고(故) 홍기선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다. 장편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는 새우잡이 선원 80여 명이 태풍으로 목숨을 잃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선택'(2003)과 '이태원 살인사건'(2009) 역시 실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영화의 역할은 우선 현실을 알리고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홍기선 감독은 '1급기밀' 촬영을 마치고 엿새 뒤인 2016년 12월 15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후반 작업은 이은 감독이 맡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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