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 필연일까…산중 스님에 찾아온 '猫한 인연'

쓰레기 봉지 뒤지던 길고양이, 밥 챙겨준 후부터 절 주변 맴돌아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보경 스님 지음/ 권윤주 그림/ 불광출판사 펴냄

겨울 안거(安居)가 시작된 산중 사찰에 손님이 찾아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느닷없이 들어선 길고양이 한 마리와 고즈넉한 일상에 젖어들던 스님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반쯤 찢긴 쓰레기 봉지에서 과일껍질을 뒤지던 '길냥이'가 발각됐다. 스님은 입가를 노랗게 물들여가며 허기를 채우던 고양이에게 우유와 토스트를 챙겨줬다. 처음엔 '이 풍족한 세상에 사람이건 동물이건 배고픈 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길고양이가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쪼그리고 앉아 스님을 바라보거나 졸졸 따라다닌다. "야~옹" 하며. 종이 상자를 가져와 내복으로 찬 바람을 막고 헌 수건을 깔아 집도 만들어줬다. 고양이 이름은 '탑전 냥이', 졸지에 '캣파파'가 된 스님은 고양이와의 작은 교감을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는 책으로 펼쳤다.

◆스님, 길냥이 아빠 되다

12년간 서울 북촌의 법련사 주지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보경 스님은 방대한 독서로 다져진 글솜씨로 유명하다. 법정 스님이 생전 "글이 좋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열 권이 넘는 책을 써낸 스님이 고양이에 대한 책을 썼다. 생경한 이야기다.

저자 보경 스님은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14년 서울 생활을 마치고 송광사 탑전의 한 칸짜리 반지하 방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한 스님이 시골 사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낡은 선풍기 바람에 더위를 식혀야 하는 산중에서 도시의 습(習)을 버리고자 스님이 택한 것은 독서와 산행이었다. 법정 스님의 처소(불일암)로 이어지는 무소유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가 왔다.

흰색과 황색이 반반 섞여 있고, 원래 집고양이였는지 꼬리가 잘려나간 귀여운 녀석은 스님에게 불가의 수행으로 얻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했던 여우의 말처럼 스님과 고양이는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부지불식간에 '고양이 집사'가 되어버린 스님은 때론 친구처럼, 때론 아이처럼 고양이와의 하루에 집중하게 된다. 아침이면 "안녕, 잘 잤어? 배고프지 기다려봐" 하고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가 하면, 해 질 녘 함께 산보(散步)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한다. 매일 물티슈로 눈물을 닦아주고, 밤에는 '냥이'가 눈부실까 봐 불도 제대로 못 켠다. 기온이 떨어지자 따뜻한 방으로 들어오려는 고양이를 위해 보일러실에 전기 매트를 깔고 새집을 마련해준다. 그것도 종이 박스와 스티로폼 박스로 아늑함을 더하고, 매트 위에 헝겊을 덮어 열기가 직접 닿지 않도록. 그야말로 지극정성이다. 밥을 안 먹는 냥이가 걱정돼 들여다볼 때나 영역 다툼으로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애 아빠다.

◆고양이, 스님에게 철학을 가르치다

혼자도 좋고, 둘이어도 좋을 그의 삶에 고양이가 들어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알아낼 수 없는 깨달음이 일었다. 함께하는 만큼 다른 무엇을 느끼게 되는 것. 책은 내면의 그 소소한 기록을 담았다. 집에 잘 들어왔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안부를 확인하고, 적적한 절간에서 말을 걸 상대가 생긴 데서 스님과 고양이 사이에는 신뢰가 생긴다. 스님은 고양이를 보살피고, 고양이는 스님을 위로하고 자각하게 한다.

고양이는 스님에게 '바라보기'와 기다리기'라는 교훈을 안겼다. 높은 곳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고양이는 번뇌의 불을 꺼트리고 자신을 성찰해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더욱 설레게 하는 고양이에게서 기다림과 인내를 배운다.

불살생(不殺生)을 제1계목으로 하는 불교에서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의 본능은 스님을 화나게 한다. 당당히 쥐를 물어오는 고양이의 살생에 당혹스러워하지만, 그것도 보살펴주는 스님에게 보이는 '공양'이라고 생각하고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

며칠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갈 때에는 큰 절 스님에게 고양이 밥을 부탁하지만, 마음이 편찮다. 장난감과 간식을 잔뜩 사들고 눈길을 헤쳐 한달음에 도착해 고양이가 잘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게 되는 자신을 보고 끊임없이 문답한다. '선문염송'에는 '비가 좋은 것은 비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여름 숲 속 선사에 장중하게 내리는 비처럼 반가운 손님, 스님에게 냥이는 그런 존재다.

결막염에 걸린 냥이를 안고 동물병원에 갔던 날 스님은 생로병사라는 숙명과 그를 대하는 자세를 곱씹었다. 또 자기 의사가 분명할 때만 움직이고, 먹을 만큼만 먹는 냥이에게서 '결코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발견한다.

◆다독가의 서재를 엿보는 재미

보경 스님이 개인적으로 체험한 일상의 기쁨은 단순한 에세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고양이가 가져다준 행복, 고양이로부터 느끼는 사랑은 수시로 떠오르는 글귀나 이야기에 녹여냈다. 다독가답게 장르도 다양하다. '열반경' '금강경' '유마경' 등 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시경' '논어' '주역' 같은 유교 경전, 고대 티베트의 기도문이나 인도 우화까지. 또 그가 즐겨 읽은 장 그르니에의 '섬'과 고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반지하방 왕국을 이미 냥이에게 양보한 스님은 사료를 먹느라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물을 먹느라 쫄쫄거리는 소리가 행복하다. 출가 인생에서 설렘을 일깨워준 유일한 존재, 탑전의 고양이가 사랑스러울수록 이별의 아픔이 클 것을 예감한다. 스님은 산중에서 일어난 고양이와의 일을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차곡차곡 기록했다고 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을 고대 로마 한 권으로 정리한 그는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로 언젠가 마주하게 될 고양이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감히 현명하여라.

시작하라,

잘 살아볼 시간을 미루는 일은

강을 건너려고 물이 다 흘러가버리기를 기다리는

촌사람 격이니라.

그동안 강물은 흐르며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238, 239쪽

그렇게 겨울 한 철, 스님이 고양이를 바라보고 고양이가 스님을 바라본다. 서로 말한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지은이 보경 스님은…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10년간 선방 생활을 거쳐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계종 교육원 교육국장, 중앙종회의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법련사 주지를 지내고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는 즐거움' '이야기 숲을 거닐다' 등 수필집 4권과 '기도하는 즐거움'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 '42강경 강설집' 등 강설집 8권을 펴냈다.

264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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