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 충청북도 옥천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 노래하던 정지용 시인의 고향

이지당은 강 건너편에서 보면 더욱 멋있다. 눈 내린 이지당은 환상적이며 평온하다. 이지당은 강 건너편에서 보면 더욱 멋있다. 눈 내린 이지당은 환상적이며 평온하다.
정지용 생가 옆에는 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정지용 생가 옆에는 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전라도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옥천 골짜기를 굽이굽이 휘돌아 가면서 기름진 옥토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충북 옥천은 대청호로 인해 물의 풍요로움이 가득한 수향(水鄕)의 고장이다. 특산물 포도, 옻, 묘목 수출이 자랑이기도 한 고장이다.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와 백제의 구진벼루 관산성 싸움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 의의가 큰 고장이기도 하다. 옥천에 볼 것이 있는가라고 묻는 이가 있겠지만, 옥주사마소, 장계관광지, 금강유원지,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둔주봉, 용암사, 육영수 생가, 환평약초마을 등 볼거리가 넘쳐흐른다. 정지용 생가, 부소담악, 이지당으로 새해 첫 답사여행을 떠난다.

◆정지용 생가

옥천읍 죽향리 하계마을에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고향'으로 대표되는 정지용(1902~1950) 시인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섭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시절에는 옥천공립보통학교 죽향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풍습에 따라 12세 때 장가를 들고 14세에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생에서 큰 계기가 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유학한 엘리트였다. 휘문고보 시절 '요람'이라는 등사판 동인지를 내고 '문우회' 활동에 참가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20년대까지 한국 시단에서는 시인의 자아를 드러내는 감상적 낭만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는 감정 노출을 배제하고 신선하고 감각적인 시어로 이미지를 묘사하여 기존 시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해방 후 그는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분과 위원장,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 주간을 역임했다. 49세 되던 1950년, 한국전쟁 중 사라진 후 소식이 없다고 한다. 당시 정부에서는 그를 '월북 작가'로 분류해 그의 작품은 어둠 속에 묻히고 그에 대한 연구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1988년 정지용 시는 해금에서 풀려 이후 연구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향수, 비, 고향, 춘설, 호수 등 많은 시와 '정지용 시집' '백록담' 시집과 '지용문학 독본' '산문' 등 산문집을 남겼다. 그의 시의 특징은 평소 꾸준히 쌓아온 영문학적 소양과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을 세련된 시어에 담아 절묘하게 조화시킨 점이다. 감각적이고 선명한 이미지와 간결하면서도 상징성 있는 언어로 표현된 시는 '진정한 한국 현대시는 정지용 시에서 비롯되었다'고 극찬을 받을 만큼 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매끝에 홀로 오르니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생가 옆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주변 건물들은 아직도 옛 모습의 가옥이 많이 보인다. 도시인 듯 농촌인 듯한 마을 풍경이 이채롭다. 초가집으로 복원된 사랑채, 우물과 흙돌담은 소박하며 고향집처럼 정감이 간다. 생가 옆에는 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전시실은 테마별로 꾸며 관람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흥미와 오락성을 갖춘 문학체험공간도 있다. 입장료는 없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부소담악(芙沼潭岳)

정지용 생가에서 4번 국도를 이용, 군북면에서 15번 지방도로로 산길을 10㎞ 달리면 이름도 생소한 부소담악이 있다.

조선 세종 때 서거정이 대구의 아름다운 경관 10곳을 추소팔경(楸沼八景)으로 불렀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금강산만큼 아름답다고 하여 금강이 빚어낸 경관을 예찬한 8경 중 부소담악은 추소리에 있다. 추소리에는 추동, 부소무니, 절골 등 3개 자연부락이 있다. 이 중 부소무니는 환산 밑 연화부수형의 명당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 앞산은 부소무니 앞 물 위에 떠 있는 산이라 하여 부소담악이라 불린다. 부소담악은 호수 위에 떠 있는 병풍바위로 길이가 무려 700m에 달한다. 부소담악은 원래는 산이었지만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산 일부가 물에 잠겨 물 위에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모습이 되었다.

노송 우거진 운치 있는 산길을 걷다 보면 중간 지점에 추소정이란 정자가 있다. 정자에 오르면 용이 호수 위를 기어가는 듯한 형상이 보인다. 하늘에서 축복이라도 하듯이 눈이 내리는 부소담악은 몽환적 분위기였다. 갈 때는 언덕 위 추소팔경펜션 입구로 가고 돌아올 때는 왼편 호수를 따라 잘 조성된 데크로드로 돌아오면 편하다.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공간은 협소하다.

◆이지당(二止堂)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인 이지당이 있다. 금강 지류인 서화천 변에 위치해 자연과 조화를 이룬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이지당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重峯 趙憲'1544~1592)과 송시열이 지방 영재를 모아 강론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다. 건평 140여㎡(40여 평)에 본채 1동과 누각으로 되어 있다. 본채는 석축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1칸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팔작지붕으로 누각은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두른 층루 건축물이다.

현재 이 건물에는 송시열의 친필인 이지당 편액이 걸려 있고 대청에는 조헌의 친필운(親筆韻)이 있다. 이 건물은 처음에는 각산동이라는 마을 이름을 따서 각산서당으로 불렸으나 송시열이 시전(詩傳)의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 선현들의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는 '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라는 문구를 따서 이지당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서화천을 따라 만들어진 나무데크로드로 들어가면 푸른 대숲과 기암괴석을 만나게 된다. 가는 길 왼편에 붉은 글씨로 음각된 '이지당 중봉선생 유상지소'(二止堂 重峯先生 遊賞之所), 그 왼쪽에는 '우재선생서'라는 글자가 보인다. 우재는 우암의 다른 호이며 중봉은 조헌의 호이다. 우암이 이곳을 방문하여 당호를 지어준 증거이다. 현재 이 건물은 1901년 옥천 옥각리에 사는 금씨, 이씨, 조씨, 안씨 네 문중에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지당은 강 건너편에서 보면 더욱 멋있다. 눈 내린 이지당은 환상적이며 평온했다. '진짜 멋진 곳이다'는 답사 일행의 감탄사가 귓가에 맴돈다. 또 찾아오리라 다짐해 본다.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공간은 협소하다.

♣Tip

▷가는 길: 대구→경부고속도→옥천IC→정지용 생가(소요시간 약 1시간 30분)

▷대박집(043-733-5788): 다양한 종류의 민물고기를 12시간 고아 '원기충전진국'으로 요리한 생선국수가 유명하다.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작은 민물고기를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둥글게 놓고 기름을 둘러 튀기듯 구운 뒤 고추장 양념장을 바르고 깻잎, 마늘, 고추와 곁들여 나오는 도리뱅뱅이도 인기가 있다. 생선국수 6천원, 도리뱅뱅이 1만원.

▷장계관광지: 푸른 대청호반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향토전시관, 숨기내기 산책로, 모던가게(아트숍), 모던갤러리 등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향토전시관(043-730-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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