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이야기'] 영화 '남한산성' 박해일

"인조 역 몰입 위해 남한산성'왕릉 걸었죠"

왕의 무게 견디기엔 약한 캐릭터

무능한 장면은 톤 다운으로 연기

출연 배우들 모두 쟁쟁한 베테랑

연기 같기도 하고 지옥 같기도 해

배우 박해일(40)은 영화 '남한산성' 출연을 앞두고 꽤 고민을 했다. 이렇게 고민한 적은 오랜만이다. 사실 그는 '남한산성' 출연 제의를 처음에는 고사했다. 기본적으로 인조 역할을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해일은 거의 마지막으로 '남한산성'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거절했으나 황동혁 감독을 만난 그는 '설득' 당했다. "해일 씨가 꼭 필요합니다"라는 황 감독의 말에 더 이상의 변명거리를 찾지 못했다. 참여하기로 하고 '내가 과연 얼마만큼 인조에 빠져들어 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기에 또 고민을 많이 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쪼개 쓰고 준비했다.

"일차적이고 무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캐릭터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왕릉과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걷기도 했어요. 이전에는 가벼운 산책로로 경험했는데 49일 고립된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니 그 공간이 사뭇 달리 느껴지더라고요. 유달리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청과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예조판서 김상헌 역의 김윤석과 순간의 치욕을 견디어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조판서 최명길 역의 이병헌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고뇌에 빠진 인조 역의 박해일 연기도 일품이다. 김윤석과 이병헌은 공식 석상에서 "박해일이 아니었으면 안 됐다"라고 수차례 힘주어 강조한 바 있다.

칭찬에 손사래 친 박해일은 "왕의 무게를 견뎌내기에는 부담감 큰 인물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을 뼈대로 잡았다"며 "인조의 무능한 지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기하기보다 그걸 절제된 톤으로, 스멀스멀 냄새가 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다 청의 무리한 요구가 있었을 때 급격히 감정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았고, 단계적으로 톤을 맞추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김윤석, 이병헌과 맞춘 호흡은 긴장감을 유발하긴 했으나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굳이 따지자면 과거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선배와 작업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박해일은 "연기 잘하는 두 분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를 얻어 더없이 기쁘더라"며 "서로에 대해, 각자의 연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표정이면서 동시에 방대한 대사를 준비하는 열정이 넘쳤다"고 즐거워했다.

"건강한 경쟁의식이 이어졌어요. 사실 김윤석, 이병헌 뒤에 있는 다른 배우들도 모두 연극계 베테랑이었거든요. 그게 부담이라고 느끼면 내 손해고, 건강한 에너지의 발산이라고 느끼면 좋은 지점이죠. 마치 연극 무대 같았어요. '살인의 추억' 때도 김뢰하, 김상경, 송강호 선배와 마주하고 혼자 앉아 있었던 경험이 있는데, 그게 마치 지옥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피할 데가 없었어요. 이번에도 그랬죠. 오래 연기했는데도 지옥 같으냐고요? 아마 연기자로 일하면서 평생 그럴 것 같아요. 익숙해지는 순간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은데요?"

박해일은 "40대 나이에 인조를 만나 연기를 해본 게 다행인 것 같다"며 "특히 어느 장르에 기대지 않고 정통사극으로 이 작품을 만난 건 자주 만날 수 없는 기회이기에 가치가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고 감독이 이렇게 밀어붙인 작품에 합류한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과거의 치부이자 민낯이 가슴 아프긴 하지만 잘 만들어내면 오래오래 두고 볼만한 사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최종병기 활'처럼 육즙을 쏟아내면서(웃음) 피로도를 끌어올려 보여준 작품이 꽤 있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배우마다 자기의 장점을 보여줄 스타일은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요즘 마음을 정제시켜 보여드리는 영화가 더 끌려요. 살다 보면 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래요. 체력 문제 때문이냐고요? 음, 제가 체력은 원래 좋지 않습니다. 전 단거리 선수는 아니고 긴 호흡으로 터벅터벅 걸어 가는 스타일 같아요."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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