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매일 신춘문예/단편소설] 아그리빠-최졔이

최졔이 1989년생 전북 전주 출생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최졔이 1989년생 전북 전주 출생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 당선작 '아그리빠'

아그리빠

굵고 긴 똥을 싸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똥꼬가 아니라 아랫배에 힘을 주어야 한다. 발가락 끝이 속절없이 꼬부라졌다. 어제저녁엔 상추 한 소쿠리를 혼자 비웠다. 밥도 한 말은 먹었다. 입 밖으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방귀만 몇 번 뀌다가 뒤를 닦았다. 피가 비쳤다.

"난 니가 똥간에 신방 차린 줄 알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화장실에 애인 숨겨둔 줄 알겠다고, 거실에 누워 야구를 보던 아빠가 기어이 한 마딜 거들었다. 잔변감 때문에 아랫배가 꿉꿉했다.

"와, 아빠, 그것참 쓰레기 같은 농담이다."

"교성이 엔간해야지."

아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고 있던 고무줄 바지 안에 손을 쑥 밀어 넣었다. 배를 긁는 건지 아랫배보다 더 아래를 긁는 건지 한동안 바지 속에서 꼼틀대는 손이 바깥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부엌바닥엔 아침나절에 차려둔 밥상이 그대로 있다. 내가 화장실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아빠는 부엌에 상을 물려두고 그림처럼 누워만 있었던 셈이다.

사실 밥투정을 않는 것만 해도 어딘가 싶었다. 밥그릇이며 반찬 그릇이 말끔했다. 달포 전쯤인가 하도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얘는 짜고 쟤는 싱겁고 말이 많기에 상을 한 번 엎었는데, 엎고서는 바닥을 치면서 엉엉 울었는데 그게 아직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설거지를 시작하자 아빠는 슬그머니 텔레비전 소리를 낮추어 놓더니 화장실엘 들어갔다.

변비는 현대인의 질병인바, 사실 아빠는 현대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생 기가 막히게 잘 싸지르며 살았다는 게 인생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인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설거지를 채 마치기도 전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벌컥 문이 열렸다. 아빠가 자리를 뜨기 전 그 모양 그대로 거실에 드러눕고 나서 삼 초쯤 지나고 나자 집안 전체에 똥냄새가 퍼졌다.

"아 화장실 문 쫌 닫고 다녀!"

"구수하고 좋은데 왜."

아빠의 똥냄새는 태변처럼 고소한 쌀 냄새도 아니고, 본인이 주장하는 바처럼 구수하지도 않았다. 아빠의 똥냄새는 맡은 사람의 화를 돋우는 그런 구린내였다.

"같은 걸 먹는데 왜 아빠 똥만 이런 냄새가 나?"

야구를 보던 아빠가 허, 와 흐, 사이의 이상한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거 변 좀 못 봤다고 야박스럽게 허냐. 아빠를 질투하는 딸이 어딨간디?"

뽀득뽀득하게 마르기 시작하는 그릇들을 보자 심사가 더욱 팍팍해졌다. 온 집안에 똥냄새가 난다는 건 집안 전체에 보이지 않는 똥의 입자들이 떠돌아다닌다는 의미였다. 그 미세하고 젖은 똥가루들에게 식기나 이부자리 위를 가려가며 내려앉을 깜냥을 기대하긴 도무지 어려울 일이었으므로. 생각은 곧 보슬보슬한 감촉이 좋아 아껴가며 덮는 담요에 냄새가 밸 일에까지 미쳤다. 미칠 것 같았다.

이불 세 채를 한꺼번에 들어다 빨랫줄에 널었다. 창고 방에 굴러다니던 야구 배트를 찾아서 아빠 손에 쥐여주었다. 중계에 심취해있던 아빠가 나를 멀뚱히 올려다보았다. 이걸로 뭘 어쩌느냐는 얼굴이었다. 야구가 좋지, 재밌지, 묻자 아빠는 암만, 좋지, 재밌지, 했다. 나는 히죽 웃었다.

"오랜만에 타격 훈련하시라고."

"어서?"

"마당서. 이불 좀 털어줘요."

허이, 참,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하며 한동안 군소릴 늘어놓던 아빠가 슬리퍼를 직직 끌고 나섰다. 텔레비전 볼륨을 한껏 높여놓은 듯 안타가 어쩌고 삼루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방문을 타넘었다. 그래도 안타 덕분에 신이 난 모양으로, 입담 좋은 해설자의 중계에 이불 터는 소리가 제법 성실히 섞여들었다.

창문을 열어젖히면서 진동하는 똥냄새의 연원을 가늠했다. 어쩌다 이렇게 쓰레기 같은 냄새가 되었을까,에 관하여. 생애의 냄새가 총망라된 선반 따위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아빠의 똥냄새는 단순히 인생의 모든 순간을 망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오랜 기간 어딘가 구석진 데 처박혀 푹푹 썩었어야 가능할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아빠의 인생을, 아니 아빠의 똥을 썩힌 것이 대체 무엇일지를 생각했다.

아빠의 똥냄새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시골집 헛간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시절 촌에 살던 이들이 으레 그랬듯 그는 꼴 베는 소년이었다. 콩 줄기며 껍질을 불 땐 솥에 푹푹 삶아 여물을 대고 닭 모이에 계란껍데기를 잘게 바숴 섞고, 그런 것들이 소년 시절 그에게 주어진 일거리였다. 내게 이 이야길 할 때, 잠깐 머뭇거리던 아빠는 그래도 우리 집안이 뼈가 굵은 양반집이니라, 하면서 떠세를 놓았다. 족보를 샀는지 친일을 했는지 당최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어찌 되었든지, 그가 마름집 장남으로서 소를 몰고 다닐 무렵 할머니는 밭일에 열심이었고 할아버지는 읍내에서 소학교 교감을 지냈다.

할아버진 동네 유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방석집으로 퇴근하는 날이 더 잦은 인사였다. 나로서는 분내 나는 처녀들 틈바구니에서 점잖이 웃으며 턱수염을 쓸었을 할아버지와 손녀가 들르는 날이면 빳빳한 만 원짜리 지폐를 준비해 자개장 깊은 곳에 찔러두는 수줍은 할아버지 사이를 어떻게 화해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래도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하늘 같은 지아비였듯, 그래서 여보나 아범이라 부르질 못하고 평생 나으리, 나으리, 했듯 아빠도 할아버질 아빠라 하진 못했고, 꼬박꼬박 네 아버지, 네 아버지, 했다.

나로서는 이처럼 유순했던 아빠가 그렇게 독한 똥냄새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깨밭을 솎던 할머니 무르팍에 장래희망조사서를 들이밀었다. 여그에 뭐를 적어야 될까요, 묻자 할머니는 이런 건 느이 아버지에게 물어야지, 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거시기가 되어라 했다. 거시기,라 하고 나선.

"사내가 법관을 허야 쓰지 않간."

장래희망조사서에 법관이라 적던 날, 아빠는 헛간과 영영 결별했다. 그에게 별달리 일으켜야 할 집안이 있다거나 앙심을 품어야 할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그가 맡았던 소일거리들은 고스란히 할머니와 고모의 차지가 되고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락의 곰팡내, 책 먼지 냄새.

다락방에서 풍기는 공고한 냄새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바가 조금 있다. 겨우내 다락에 넣어둔 이불을 꺼냈을 때, 틈새에 끼인 채로 죽어 있던 쥐새끼들과 마당에 빨랫줄을 늘어뜨려 이불을 널던 것과 이불에 켜켜이 묻어 있던 묵은 먼지 탓에 눈 밑이 민달팽이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과 처마 밑에 오종종 심긴 채송화의 촌스러운 빛깔과 그날 밤 내가 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만큼.

거긴 집의 꼭대기면서 웅덩이 같다는 느낌을 주는 데였다. 다락에서 오래되어 잊힌 것들은 한데 고여 있다가 시간과 함께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건 바스러진다는 느낌에 가까워서, 그곳에서 풍기는 냄새 역시 끈덕지거나 질척하다기보다는 좀 더 묵직하고 안온하며 어딘가 산뜻한 데가 있었다. 낡았으나 도무지 남루하진 않은, 그런.

아빠는 거기서, 다락에 얹어둔 책상머리 앞에서 거시기가 되느라 육법전서와 함께, 그 집의 대들보와 함께 조금씩 말라붙었다. 그가 거기서 자라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곰팡이는 슬고 달의 배가 부풀고 그는 어느새 시골소년답잖게 희멀건 낯빛이며 팔뚝을 갖게 되었다. 가끔씩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온 밤 내내 무릎이 쑤시는 날도 있었는데, 그는 그것이 성장통인지 한 자리에 종일토록 앉아만 있어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의 인생이 다시금 전환을 맞이하게 된 것은 까마득하게 햇빛이 쨍했다던 날의 일이었다. 갑작스레 심부름을 갈 일이 생겼다. 그날따라 그를 대신할 할머니도 고모도 읍내엘 가고 없던 터였다. 할머니나 고모가 없는데도 술상을 봐 오랬던 걸 보면, 아마 할아버진 동네 사람들에게 그를 자랑할 심사였을 성싶다. 아빠는 주둥이가 넘칠 만큼 푸지게 담긴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어귀의 텃밭엘 향해 갔다.

날은 뜨시고 목은 타는데 술은 걸음마다 넘치니 그가 어쨌겠는지.

아빠가 텃밭 귀퉁이에 접어들 무렵, 할아버지와 동네 어른 몇은 이미 두렁 초입에 자리를 깔고 앉은 채였다. 그가 오는 것을 본 옆집 아지매가 씩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아, 왜 도마도를 안 보내고."

"거 도마도는 내가 잊어부렀네."

농을 치며 웃는 할아버질 보고는 그는 안심이 되었다 했다. 첫술이 아니구나, 술이 떨어져서 부른 거로구나, 어르신들이 취했으니 좀 모자라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하여 그는 마음을 탁 놓고, 출발할 때보다 한참은 가벼워진 술주전자를 주안상 곁에 내려두었다. 맞은 자리에 앉아있던 아지매가 은근슬쩍 그의 허리를 장독 쓰다듬듯 만진 것은 그때였다. 장해서였는지 실해서였는지 하여튼 신주단지 문지르듯 했다.

"공부를 편안히 앉어가지고 해야지, 꼬치농사 첨 짓는 사람인갑네."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아빠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웃었다.

"아이, 꼬치가 중허지 갸 허리가 중헌가."

훗날 아빠는 내 앞에서, 그게 왜 그리 야릇하면서 웃겼는지 모르겠다고 술회했다. 어쨌거나 그때 그는 아지매 손길에 속절없이 힉, 힉, 웃다가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동리엔 교감집 장남한테 간질이 들었다고, 법 공부가 사람을 숱하게 잡는다더니 그집 아들도 발작이 났다고 소문이 돌았다. 그는 그냥, 취했을 뿐이었는데.

그는 내게 이다음의 일과 그다음 일 사이에 있던 일에 대해선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법관 지망생이 미대 지망생으로 둔갑을 할 수 있었는가,에 관해서는 말이다. 짐작건대 할아버진 아빠에게 꼬치가 중허지 거시기가 중헌가, 했을 테고 그는 또 속없이 네 아버지, 네 아버지, 했을 테다. 그간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항변 한 번쯤 해볼 법한데도.

어쩌면 이날의 사건이 그에겐 모종의 행운이었는지 몰랐다.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나를 데리고 시골집엘 내려가던 아빠가 지나가듯 이렇게 말했다.

"야, 느이 할배가 억지로 뭘 시키거든 기냥 콱 드러누어 뻐려라."

그럼에도 아빠는 다락과의 작별만은 오래도록 미루었다. 유년 동안 꼬박 익숙해진 거기서, 책상이 있던 그 자리에 그는 이젤을 놓아두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적어도 할아버지에게 서울 소재 대학의 합격 증서를 안겨줄 정도로는 성실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도, 분명 물감과 팔레트와 캔버스 따위의 화구들이 육법전서만큼 자랑스럽진 못했을 테지만, 자기의 가문이 예부터 시서화에 능한 선비집안이었단 데서 아빠의 연원을 찾아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의 작품 중엔 유독 여자 그림이 많았다. 그는 일평생 여자를 그렸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렸다. 정물화나 소묘는 언제나 억지로, 겨우겨우 한다는 느낌이었다. 형태를 잡고 한숨 몇 번, 밑색을 깐 다음에 담배 몇 대, 그리고 하루나 이틀쯤 못 본 척 내버려 두는 식이었다. 그런 그림을 몇 장 완성하고 나선 그간의 원망을 풀듯 여자를 그렸다. 콩테를 써서 흐르듯이 그려내는 드로잉이 다수였으나 더러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수채나 유화를 썼다. 하여간에 언제나 여자를 그렸다. 머리 색이나 골격, 이목구비 등 어디를 보나 서구적 미의 기준을 따른 듯한 그림들이었다. 그는 그런 것에 항상 지영, 진경, 선영, 형미 따위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였다.

내가 아빠의 그림에 관심을 갖기라도 하면 그는 입버릇처럼 이게 아니라고만 말했다. 예쁜데 왜요? 물으면, 이건 당신이 원하던 게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번도 자신의 그림에 만족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만족하길 두려워하는 듯도 했다.

아빠는 아마도 살빛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리라. 볕에 그을린 아지매의 손등이든 영화관 간판에 그려진 헐벗은 여자의 궁둥이든, 논밭과 읍내 사무소를 가리지 않고 바지런히 다녔을 다방 레지들의 매끄런 허벅지였든, 어쨌든, 아빠는 허다한 살들에 감돌았을 황금과 분홍에 매혹된 듯했다.

"야아, 이 가시내 살빛 봐라. 낯낯허니 복성 같어."

아빠가 어린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나는 갖고 놀던 마론 인형을 화실 구석에 내팽개둔 채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어린 나에게 들고 있던 책의 한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그려진 다양한 포즈의 여자들에게는 뭐랄까, 똑같이 양것임에도 불구하고 바비나 제니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종류의, 풍요로움이 있었다.

"이것을 사람이 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대단치?"

나는 즉각 마론 인형의 세계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대신에 그가 수업엘 들어간 동안 서가를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살갗은 살색이 아니라는 것, 광원의 성질에 따라 저마다의 빛깔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곳에 빼곡했던 누드 책을 훔쳐보며 알았다. 희고, 살집이 두둑하고 굴곡이 확실한 여자들……. 그녀들의 벗은 몸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내려갈 때 어린 내가 느꼈던, 몸의 중심에서부터 진한 물감이 퍼져 나가는 듯했던, 이상야릇한 기분.

그가 도대체 무슨 뜻에서 어린 나에게 누드화집을 보여 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애당초 제 손으로는 미숫가루 하나 못 타 잡숫는 양반이 무슨 재주로 갓난쟁이를 길렀는지, 거기서부터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이겠으나.

전해 들은 얘기로야, 아빠는 화실 앞에서 나를 주웠다. 배냇옷 속엔 아기의 이름 대신 내가 당신의 딸이란 내용의 메모 한 장이 있었다. 이틀 밤낮을 고심한 끝에 그는 화실 구석에 단칸방을 만들었다. 아기 침대도 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름이 없고, 다만 잘 먹는 아기였다. 그는 다시 한나절을 고심해 천지가 요동할 일을 감수하기로 결정을 봤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손주의 존재를 알리기로 했다.

"여직 여러서 말씀을 못 디렸는디. 여그가 제 거시기요."

그는 마치 며느릿감을 선보이듯 말하며 강보에 싸인 나를 아랫목으로 들이밀었다. 손주는 사생아였고 아빠는 미혼부였으므로, 장가도 못 가고 홀애비가 되었으므로 할머니는 앓아누웠다. 할아버진 그저 껄껄 웃었다. 일가의 거시기가 장성하여 사내가 되었다는 느낌의 웃음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러 말 없이 할아버지는 내 이름을 짓고 논 한 마지기를 팔아 아빠의 화실을 미술학원으로 바꾸었다.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화구들의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그곳에서 보았던 색색의 여체들, 거기서 받은 인상 모두를 물감 냄새가 대표하게 된 듯도 했다. 물감에서 맡아지는 냄새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사람을 달뜨게 하는 데가 있었다. 그럼에도 밝은 노랑이나 빨강 따위가 아니라 회색……이라는 느낌이었는데, 화실에 부려둔 사물들을 해 질 녘 어스름 속에서, 학원에 수강생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고요와…… 안도 어린 쓸쓸함 속에서, 길게 늘어진 그늘 속에서 바라볼 때 특히 그랬다. 석회, 조개나 굴과 같은 어패류의 껍데기, 말라비틀어진 사과, 군데군데 목탄 가루로 얼룩진 석고상, 손을 대면 바스락거리는 과자 봉지, 북어나 오징어와 같은 건어물들. 영원히 침묵할 정물들. 물감 냄새는 회색이다.

아빠는 이제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다. 그냥저냥 함께 앉아 텔레비전에 정신을 팔고 있다가, 저녁 준비를 해야겠단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공들인 요리를 해다 바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였다. 안 그러면 또 무슨 헛소리로 복장을 뒤집을지.

전부터 그는 오징어순대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급기야 자기가 바다에서 잡아왔다면서, 오천 원쯤 주고 샀을 오징어 세 마릴 들고 귀가했다. 만들어 놓은 반찬에 대고 하는 타박이 옵션으로 딸려 왔다. 그래서 밥상을 엎었다. 절반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후회는 빠르게 찾아들었고 더럭 서러워졌다. 바닥을 치며 통곡을 하는데도 아빠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무안해선지 울음은 금세 멎었다. 한동안 곁눈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한풀 꺾인 기세로 그게 도대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줄 아느냐, 임신한 여자도 아니고 대체 왜 그러느냐 따졌다.

"내가 임신을 했는가 안 했는가 니가 어찌 아냐. 입덧할 때 못 먹은 건 평생 한으로 남는 건디."

"뭐?"

"동생을 하나 놓아줄래도 어디 손발이 맞어야지? 느작머리없이 지 아부지 식사하는데 상을 엎고."

한동안 천장을 멀거니 올려다보던 아빠가 거실바닥에 너부러진 소시지 하나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 그러더니 깨금발로 엎어진 찬이며 접시를 피해 화장실엘 갔다. 나는 그의 똥냄새를 맡으며 밥상을 치웠다. 치우면서 접시 몇 개가 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현듯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소시지에 유리조각이 박혔으면, 하필 아빠가 그걸 삼켰으면 어떻게 하지 싶었다. 어쩌면 유리조각은 그의 배 속에서 똥이 되어 나오기 전에 내장에 미세한 상처를 내거나, 혈관을 상하게 할지도 몰랐다. 힘이 들어가 팽팽해진 괄약근을 찢어놓기라도 하면? 싸는 게 낙인 사람인데.

화장실에서 나온 그에게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 물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야 동생도 낳아 줄 것 아니냐고. 그는 실실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화장실서 일 보다 닐 낳었다고 했지? 어느 날 저서도 애 놓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어린 나는 명절날 육전을 부치다 말고 엄마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동태전을 부치던 할머니는 못 들은 척했고 만두피를 밀던 할아버지는 아빠가 날 주웠다고 답했다. 배냇옷에 든 쪽지엔 아빠가 아빠라고만 적혀 있었다고. 그러므로 엄마가 누군지는 영영 알 수 없다고 했다. 곁에 누워서 전을 부치는 족족 주워 먹던 아빠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애한테 쓸데없는 거짓말을 한다면서 성질을 냈다. 왜 애를 헷갈리게 하느냐고.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라이팬에 두른 기름이 탁 튀었다. 아빠가 입은 바지의 무르팍에 둥근 얼룩이 졌다.

"야야, 아부지가 진실을 알려주마."

그는 기세등등하게, 의미심장하게 속삭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그의 똥구멍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하도 똥이 안 나와서 식은땀이 흐르고 입에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힘을 주었는데, 하늘이 노래지고 딱 죽는구나 싶었는데, 이대로 질 수 없단 생각이 들어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고 했다. 학, 합, 하! 그 순간 풍덩 소리와 함께 변기 물에 떨어진 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화를 낸 것을 본 일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서, 어린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이겠거니 했다.

냉동실 문을 열고 꽝꽝 얼어붙은 오징어를 꺼냈다. 양재기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포장째 담갔다. 해동되는 동안 순대 속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숙주나물과 부추, 당면 따위를 데쳐 잘게 다졌다. 두부 으깬 것에 오징어 다리를 채 썬 것, 양념을 넣어 한데 무치고 보니 그럴듯했다. 알알한 것을 유독 좋다 하니 청양고추도 다져 넣었다. 오징어 몸통에 손을 넣고 내장을 꺼냈다. 차고 물컹한 느낌에 소스라쳤다. 동사한 매머드 똥구멍 안쪽을 더듬는 느낌. 오징어 먹물을 순대 속에 섞으면 감칠맛이 돈다 해서 나름대로는 먹물 주머니를 터트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찜통을 불에 얹을 즈음이 되자 시장기가 돌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아빠가 부엌을 기웃거렸다.

"뭐여?"

"오징어순대, 먹고 싶다며."

"어이구, 나는 새장가 갈 때나 먹어보나 했지."

"여자는 있고?"

반가움으로 해바라졌던 그의 얼굴이 금세 찌푸려졌다. 남세스럽게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이었다.

"요새는 개인작을 통 안 하데? 주위에 여자가 말랐지? 그치?"

돌연 아빠는 앵돌아진 얼굴을 하곤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아직까지도 그림을 그릴 때의 아빠의 뒷모습과 옆모습이 또렷했다. 그가 그리는 그림만큼이나 흐르듯 떨어지던 아빠의 몸, 아빠의 몸을 이루는 그 선들을 떠올릴 때마다 물감 냄새가 맡아졌다. 혹은 거꾸로, 어디서고 물감 냄새를 맡게라도 되면 서쪽으로 뚫린 창에서 지는 햇빛이 들이칠 때 진한 파랑을 띠고 음영이 지던 단단한 콧날과 굳게 다물린 입, 주름 잡힌 눈가, 완곡하되 고집 있게 벌어진 어깨, 퍼렇게 핏줄이 도드라진, 섬세하고 건강한 팔뚝 같은 것들이 붙박여 정지된 장면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기억 속에서 그는 옆모습이나 뒷모습밖엔 갖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 여느 날이고 늦기 전에, 이제라도, 마음속에 새겨두어야겠다고 아빠의 앞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건 화가가 아니라 똥쟁이다,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냉수를 한 컵 들이켠 아빠가 밥상 앞에 주저앉아 구시렁거렸다.

"눈 뜨기 무섭게 사고 치는 거 달래가매 키웠더니……."

"내가 무슨 사고?"

"마르라고 내둔 그림에 범벅을 해놓질 않나, 정물로 쓸라고 사둔 거를 오매 가매 훔쳐 먹질 않나?"

"애를 화실에서 길렀는데 그럼, 그 정도도 예상 못 했단 말야?"

즉각적인 나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니 석고상이랑 뽀뽀하던 건 기억이나 허냐?"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었다. 말문이 턱 막혀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찜통 뚜껑을 열었다. 얼굴에 뜨거운 김이 훅 끼쳤다. 삽시간에 양 뺨이 홧홧해졌다.

아그리파는 내 첫사랑이었다. 아빠가 내게 소묘를 가르칠 무렵부터, 어린 나는 아그리파를 지독하게 사랑했다. 그의 곱슬머리와 고집 센 눈매와 뭉툭한 콧날과 굳게 닫힌 입술 모두를 사랑했다. 그를 이루는 선과 면, 질감과 음영 모두를. 아, 라고 부드럽게 열리는 발음으로 시작해서 파, 하고 부서지며 끝나는 그의 이름이 좋았다. 짓궂게도 석고상에 낙서하길 즐기는 원생들의 손에서 아그리파를 지켜내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시간이 흘러 그가 가진 형태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한층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꿈을 꿨다. 나는 아그리파에게 입을 맞췄고, 나직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 하고 시작해 파, 하고 끝나는 그의 이름. 그의 텅 빈 동공에 소묘용 연필로 그린 듯한 동공이 생겼다. 그의 눈이 뜨인 다음엔 천천히 입술이 갈라져 그 틈으로 혀가 튀어나왔다. 따뜻하고 민활한 혓바닥이 내 입속을 밀고 들어왔다. 여태껏 잡아낼 수 없었던, 그의 혀. 그의 체온이 주는 감각. 아, 나는 그를 사랑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소묘실로 달려갔다. 아그리파는 지난밤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입을 맞췄다. 학원 바닥을 비질하다가 내 꼴을 발견한 아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할 거면 미끈하니 잘빠진 줄리앙하고나 하지 왜 심통 맞게 생긴 아그리파를 붙들고 앉았느냐고 했다. 그의 입술은 축축하게 젖었으나 그에게선 찝찌름하고 텁텁한 맛밖에 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실망감과 수치심 탓에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뽀뽀하면 사람 될 줄 알았다. 왜?"

"허이고야."

생각해 봐, 나는 먹기 좋게 자른 오징어순대를 접시로 옮겨 담으며 말했다.

"사내가 애 낳는단 말을 믿으면서 자랐는데 내 안에 과학적 사고가 깃들 틈이 있었겠느냐고."

"그거는 어디 꺼지나 역사적 사실인디?"

허. 내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알에서 났다 해도 고마울까 말깐데. 똥이라고. 밥상 위에 접시를 던지듯 내려놓고 외쳤다.

"작작 좀 해라 진짜!"

"벨 수가 있냐? 내가 낳은 거시긴 내가 낳은 거시기제."

아빠는 늙은 소처럼 두 눈을 끔벅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허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 화장실 방향을 가리켰다.

"그럼, 빨리 화장실 가서 동생 하나 싸."

갓 쪄낸 오징어순대에서 달콤하고 순한 짠내와 함께 알큰한 냄새가 피었다. 언제든 맡으면 배가 고픈 비린내. 그는 나를 쳐다보다가, 순대가 놓인 접시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밥솥 뚜껑을 열고 아빠 몫의 밥그릇을 집어들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똥구멍에 힘이 풀려 새어나오는 방구처럼 목소리엔 결기도 응분도 없이, 숫제 한탄조였다.

"늬가 내 딸이냐, 마누라냐? 마누라도 너처럼 앙살을 부리진 않었을 것이다, 너처럼."

"아, 긍께."

밥상 위에 흰 김이 올라오는 밥그릇을 탁, 놓았다. 양반다릴 하고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아빠가 화들짝 놀라 허리를 곧게 펴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 마누라가 대체 누구였느냔 거잖아, 이제 가르쳐 줄 때도 됐잖아."

"아아니, 임마야, 내 말 좀 들어 봐라. 니는 애비가 똥꾸녕으로 낳었다고 몇 번을 말허냐."

아빠는 여전히 허리를 곧게 편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엄마가 누구인지를 묻고, 그러면 아빠는 내가 네 엄마다 대답하고, 자라는 동안 규칙이 되어 지긋지긋해진 대화. 우리는 가족이지, 아빠는 홀애비고 나는 사생아야. 엄마는 어디에 있지? 하면, 너는 내가 낳았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 나는 그가 나를 낳았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한 채 이부자리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면 얼른 가서 하나 더 싸. 일단 싸면 내가 길러 줄 테니까."

"애를 싸야 놓냐, 배야 놓지!"

"그니까아, 날 밴 게 누구냐고!"

한동안 우리는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 대치 중인 호랑이와 뱀처럼 서로의 얼굴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별안간 아빠가 숟가락을 들더니 밥을 퍽, 퍽, 떠먹기 시작했다. 야야, 거기 국 좀 다오, 해서 엉겁결에 국을 퍼 줬다. 물을 달라고 해서 물도 주고 김치 달라 해서 김치도 줬다. 오징어순대엔 젓가락 한 번 대질 않는 게 분해 자꾸 이럴 거냐고, 왜 말을 안 해 주냐고 그를 채근했다.

아빠는 밥술을 들 때처럼 예고도 없이 상을 물렸다. 밥상을 조금 내 쪽으로 밀어놓은 그가 물 몇 모금으로 입 안을 가셔내더니, 비장한 얼굴을 했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나도 모른다!"

드디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가, 싶어 마른침을 삼키다 사레가 들었다. 컥컥 거리는 내게 아빠가 자기 앞의 컵을 들어 건넸다. 반가량 남은 물 밑바닥에 고춧가루와…… 뭉개진 밥풀처럼 보이는 게 몇 알 가라앉아 있었다. 물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잔기침이 삭 가셨다.

"봐라, 니 생긴 건 나를 쏙 뺐는데 성깔은 진경일 닮었고, 샐샐 눈웃음 칠 때 보면 이쁜 것이 지영이 갸가 배서 났나 싶고, 맴씨 큼직허니 밥하는 거 보면 또 형민가 선영인가 긴가민가허고, 에이 시벌, 내가 알 게 뭐냐! 닌 내 거시기여! 내 씨여 내 씨!"

거실에 어색함이 내려앉았다. 아빠는 발가락 사이의 때를 밀고 있다. 저런 사내에게 어디서 여자를 트럭으로 대 줬나, 하도 여기저기 싸고 뿌리고 범벅을 하고 다녀서 누구 집 자식인지 모르겠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자식이 어느 소생인지 짐작도 못할 만큼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는 건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내 안에 조강지처의 분심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할머니는 아빠가 홀애비 신세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 그의 꼬치가 길하며 실한 능력을 타고났다 믿었다. 지금이야 헤매고 다녀도 옛날엔 재주 많고 성실한 만큼 따르던 기집도 많던 애였다고, 어디서고 참한 색시만 하나 구해오면, 그땐 나한테도 엄마가 생기는 거라고 했다. 색시가 생기면 뭘 해요, 그게 엄마는 아니잖아요, 또박또박 말대답하며 그때 나는…… 뭐라고 했지.

그때 할머니의 시름은 한숨만큼 깊었을 테다.

"혈액형 같은 걸로도 찾을 수 있잖아."

"아빤 에이형 아님 안 사귀었어. 에이형이 고분고분허니 니랑 달러. 니는 검사를 다시 해야 쓰겄어."

"혹시 말야."

다소간 차분해진 목소리에, 아빠는 실청한 사람처럼 내 입모양만 쳐다봤다. 나는 아빠에게 나직이 물었다. 내가 아빠 딸이 아닐 그런 가능성은 없어? 어쩌면 우리가 남남인 건 아닐까? 밥상을 붙든 아빠의 손가락이 희어졌다. 엎기만 해 봐라, 하는 심사로 내 눈매 역시 사나워졌다. 밥풀 묻은 밥숟가락이 팩, 내 발밑에서 동그라졌다. 낯빛이 울그락불그락해선 숟가락 하나를 내던지는 선에서 분노가 그치는가 싶더니.

"니는 째깐한 게 어찌 그러냐! 어찌 그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빠가 슬리퍼를 꿰어 신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애 안 놓고 어딜 가! 싸러 가? 싸러 가냐고!"

나는 괜히 큰소릴 쳤다. 쾅, 하고 바깥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성실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꾸준히 미술 잡지에 입시 결과를 내고 개인작을 싣고, 제 몫을 하고도 남는 스타 강사를 하나 키워낼 정도로 열심이었다. 가문 논에 비가 오듯이 원생이 들었다가, 나갔다. 그때도 아빠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느닷없이 적막해진 학원에서, 매일매일 비질을 하고 물걸레질을 하면서 여느 때보다 많은 여자를 그렸다.

다음 해, 구정을 맞아 우리는 시골집엘 내려갔다. 지갑 사정이야 변함없이 박했지만 아빠는 이유 없이 즐거워보였다. 그는 내게 외출복을 사 입히는 대신 중학교 교복을 입혔다. 아직 새 학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교복을 입느냔 내 항변은 얼굴이 온통 싱글벙글한 웃음으로 범벅된 아빠 앞에서 무색해졌다. 읍내 시장에서 과일 한 상자를 사고, 식당을 겸하는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끊었다. 은행서는 할머니에게 줄 용돈이라며 두툼히 현찰을 뽑았다.

이번 달의 생활을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아빠의 기분은 변함없이 좋았다. 야야, 니가 벌써 중학교를 가야, 하면서. 동네 풀길로 차를 몰면서, 아빠는 해변을 따라 난 고속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연인들이 하듯 차창을 모두 내렸다. 지독한 거름 냄새가 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코밑을 탁 쏘는 걸로도 모자라 쓸데없이 길고 둔중한 여운을 남기는, 똥냄새. 야야, 고향 냄새다! 아빠는 외쳤고, 이건 고향 냄새가 아니라 똥냄새야! 내가 투덜거렸다.

아빠와 나는 만류하는 할머니를 등 뒤에 둔 채 다락방 청소를 했다. 거기선 별별 물건들이 다 튀어나왔다. 어린 내가 만든 보물지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헐거워진 마룻바닥 밑에는 깨진 유리구슬과 칠이 벗겨진 머리핀 장식 따위가 들어 있었다.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바람에 난리를 겪었던 아빠의 자동차 열쇠도 거기 있었다. 철마다 시골집을 방문하면 비틀린 마루 밑에 넣어두었던 물건들, 더러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 모두가 거기서 발견됐다. 아빠는 나더러 하는 짓도 그렇거니와 숨겨두고 까맣게 잊어버린 양이 까마귀 같다며 놀렸으나, 사실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잊힐 때까지 잊지 않고 있다가 잊은 다음에야 발견하려던 것을 눈치 없는 아빠가 헤집어 놓았을 뿐이다.

내가 마루 밑에 감춘 잡동사니 이외에도 다리가 부러진 이젤, 쓰다 만 물감과 쥐가 귀퉁이를 갉아먹은 캔버스 몇 개, 나달나달해진 법전, 망가진 전축, 다섯 상자나 되는 엘피판 따위가 발견되었다. 물건들은 뒤늦은 심문이라도 받듯 햇빛 푸진 마당 가운데로 끌려나왔다. 버릴 것과 다시 보관할 것들이 마당 양편에 쌓여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심드렁히 이불을 들춰 널던 내가 비명을 질렀다. 잠들어 있던 닭 몇 마리가 비명에 놀라 홰를 쳤다.

틈바구니에 새끼 쥐들이 알이라도 깨고 난 것처럼 오종종히 죽어 있었다. 쥐들은 물건의 처분에 앞서 꽃밭에 묻혔다. 캔버스에 젯소를 바를 때 쓰는 커다란 막붓을 들고 쥐가 살던 이불을 털었다. 버릴 것들을 한데 모은 자리에 불을 붙이고 있자니까, 두 눈두덩이 소박맞아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운 색시처럼 부었다. 무섭게 솟는 연기에 눈이 맵구나 싶어 문지른 게 화근이었다. 할아버지 손을 부여잡고 읍내에 있는 약국엘 다녀왔다. 할아버지보다 앞서 걷던 내가 시골집 대문을 열자 다락 청소는 모두 끝난 뒤였고 온 집안이 괴이쩍을 만큼 고요했다.

할머니는 안방에, 아빠는 거실에 딸린 곁방에 드러누워 있었다. 기척만으로도 두 사람이 자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안쪽의 기색을 살핀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등짐을 진 채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눈치껏 거실을 맴돌며 놀았다. 슬그머니 일어난 아빠는 혼자서 소주 두어 병을 비웠다.

"야야, 내 말 좀 들어봐라."

그는 맞은 자리에 나를 앉히고도 자작을 멈추지 않았다. 술동무로 나를 택한 것 같았고 안주 삼아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듯했다. 그는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다, 할 만한 순간 같은 게 없었다고. 오히려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다, 하면서 살았노라고. 초조했다고. 근디 나가 핏댕이 같은 니를 봤을 때……, 하고 그는 잠깐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때 한눈에 닌 내 거시기다! 알었다."

그짝꺼정 아부지라는 게 뭔가, 개코도 모르고 생각도 안 헌 것이 이거여, 니가, 니다! 하고 알아뿌렀어, 아빠는 말했다. 내가 나다! 라는 게, 도대체 모를 말이었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참말 싱기한 일이시, 암만, 니는 하늘이 다시 돌라 해도……. 곧 떨어질 것처럼 애매하게 꺾인 고개를 주억대던 아빠가 꺼억, 하고 트림했다. 독한 소주냄새가 훅 끼쳤다. 코를 부여잡았으나 뒤늦었던 듯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아빠가 씩 웃었다. 그니께, 아닌 게 아인 거지, 알간? 긴 거는 긴 거여, 긴 거. 니랑 내랑 어찌 해부까, 어찌 살까, 혀도 각단지게 맴먹으면 시상 다아, 폴짜대로 되는 거여.

"혀도 왜 이리 날마당 사난지 모르겄어."

그때 나는 할머니에게 또박또박 말대답하던 때처럼, 할머니가 어색한 얼굴로 지아빠랑 다르게 여간이 아니라며 고개를 젓던 때처럼, 어린 나의 얼굴과 목소리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홀애비지만 나는 사생아잖아. 누구 팔자가 더 드세겠어."

새벽녘엔가, 헛헛해진 잠자리의 냉기와 누군가 다락마루를 밟는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깼다. 창밖이 검었다. 처음에는 꿈인가, 했고 잠이 다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아빠인가, 하다가 퍼뜩 정신이 맑아졌다. 무슨 생각에선지, 사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발소리를 죽이고서 계단을 기어올랐다. 층계참 끝에 붙은 다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아빠는, 문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였다. 그의 등은 일정한 리듬 없이 들썩거렸다. 소리를 죽여서 울거나 웃는 사람이 보일 법한 그런 동작을 하고 한참 있었다. 낮 동안 안에 든 것을 다 끄집어내 이제는 텅 비어 있을 마루 위에서 아빠는 웃거나 울고 있었다. 외로움에도, 절망에도, 슬픔에도, 차라리 그것이 아닌 모든 감정에 깃든 냄새를, 그날 나는 맡은 것 같았다.

그날 아빠가 감춘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저 시골집에 대하여, 그곳의 다락마루에 대하여 어느새인가, 잊힐 때까지 잊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아빠는 별안간 미술학원을 정리했고, 정리한 돈으로 우리가 살 집을 샀고, 무슨 시험인가를 봐서 말단 공무원이 되었고, 나에게도 입만 열면 그저 공무원이 최고니라, 하게 되었고, 더 이상 여자를 그리지 않았고, 화집 대신에 스포츠 프로를 즐겨보게 됐고, 퇴근 후에 동료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맥주 한잔 걸치는 것이 인생의 최고 기쁨인 건강맨이 되었다. 세상없이 귀가하면서도 집안일엔 손 하나 까닥 않는 못된 가부장이 되었다. ♠

◇ 당선소감…헛되이 탕진 않겠다, 사는 대로 쓰고 쓴 대로 살겠다

사실을 말하자면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몇 번이나 되묻기도 했습니다. 급기야는 비명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어다닌 것이지만……. 뒤이어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혀 목 끝이 콱 막히고 말았습니다. 길이 끝나고 여행이 시작되었다는데, 차라리 여행이 끝나고 길이 시작되었는지? 어쩌면 처음부터 여행 같은 건 없었고 제가 저 자신도 잘 모르는 길 위에 서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건 뒤꿈치부터 늘어진 그림자와 같은지 모릅니다.

그래도 저를 딸기농장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신 점만큼은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지면을 빌려 인사드려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대체로 저를 오래 참아주신 분들입니다. 가장 먼저는 주님께서 제게 베푸신 인내와 사랑에 값할 도리가 없겠고,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사고 치는 저 같은 딸을 위해 애써주신 엄마와 아빠에게도 감사합니다. 반백수 언니를 변함없이 좋아해 준 동생들도 고맙습니다. 더불어 가족들에게 이건 소설일 뿐이고 글쓴이인 저 자신의 정신과 현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존재를 모르면 존재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말씀으로 저를 글쓰기의 세계로 초대해 주신 단국대학교 최수웅 선생님, 무식하게 하면 뭐라도 되게 되어 있다 격려해주신 박덕규 선생님, 시와 평론을 잘 모르는 저를 4년 내내 이끌어주신 김수복 선생님, 강상대 선생님, 감사합니다. 최생존, 임승부, 이손님과 김챠밍이 함께여서 즐거웠던 시마이, 한국담배인삼공사에 대한 변함없는 애증에 동참해 준 DDR, 주서요를 필두로 한 노예16년 여러분, 키위구매자 최짐승, 외노자 김쏘쿨, 시드니의 이루이, 마지막으로 이해토에게 저를 발견해주고 함께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한심한 점이 많은 원고임에도 이처럼 귀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심사위원 김화영 선생님, 오정희 선생님, 소식 전해주신 매일신문사 담당 기자님, 감사합니다. 신변 벽두에 이 글을 읽고 계실 어떤 분들, 어쩌면 저의 독자가 되어주실지 모르는 분들께도 미리 인사 드립니다. 제가 훌륭한 작가가 될 때까지 부디 저를 잊고 계세요. 헛되이 탕진하지 않겠습니다, 사는 대로 쓰고 쓴 대로 살겠습니다.

◇심사평…퉁명스런 말로 감싼 그리움과 사랑, 반어적 표현의 결 돋보여

예심을 거친 일곱 편의 소설은, 전통적 서사 양식에 충실한가 하면 그 나름의 실험성이 두드러지거나 만화적 발상에서 비롯하거나 종말론적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등등 그 경향이 다양하였다. 그중 다음 세 작품에 주목하였다.

'플루아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그래서 주민들이 모두 탈출한 섬에 고립무원의 상태로 남겨진 노인과 소년의 절박한 생활과 심리, 노인의 죽음과 소년이 마침내 섬을 떠나가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재앙에의 경고, 일종의 에코소설이라 할 수 있다. 차분한 호흡과 단정한 문장에 호감이 갔으나 갈등구조가 약해 밋밋한 흐름이 되었다.

'너의 아름다운 곳'

미혼모시설의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여성 무슬림 미혼모의 대책 없는 낙천성을 '희망'으로 치환하여 제시하는 점도 글쓴이의 능력으로 보인다. 현재 그네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인생의 덫이자 절망의 진원지일 수 있는 '자궁'에 대한 전언, 즉 '아름다운 곳'의 의미는 심장하다. 문장도 구성도 무리가 없다.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라는 점에서 참신성이 떨어지고, 미혼모의 딸로 자란 주인공 역시 미혼모가 된다는 설정이 다소 상투적으로 보였다.

'아그리빠'

이 소설은 미혼부인 아버지와 그의 딸, 즉 엄마의 존재에 대한 하등의 정보도 없이 자란 '나'의 티격태격으로 이어지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당돌하고 발칙하고 거침없는 표현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엉뚱한 유머에 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읽어가면서, 진정한 표현은 그 단어의 갈피에 옆모습 특유의 암시적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진정한 마음은 그 주름 속에 수줍은 머뭇거림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플루아카'의 섬세한 서술을 통한 경고. '너의 아름다운 곳'이 갖고 있는 메시지의 상징성 부각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기지만 그리움과 사랑을 거칠고 퉁명스러운 말로 감싸서 은폐하는 반어적 문법으로 드러내는 '아그리빠'의 문학적 개성이 단연 두드러졌다. 그러나 바로 이 작품 자체보다는 표현의 결에서 느껴지는 장래의 자질과 가능성에 더 주목하여 '아그리빠'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심사위원=김화영(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오정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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