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세종대왕 후손으로 친일 꼬리표 남긴 이규완

'한일합방은 당연하다. 검정 고무신 하나 자기 손으로 못 만드는 민족이 무슨 염치로 독립할 생각을 하느냐'고 생각한 조선 왕족의 후예. 몰락한 세종대왕 후손으로 1862년 서울 뚝섬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관료를 지낸 이규완(李圭完)이 그였다. 게으른 조선민족이 독립 자격이 없고 나태와 탐욕, 부패로 망국은 당연하다는 것. 1910년 합방 뒤 강원도·함경도 도장관 등 관료를 지냈고 1919년 3'1만세운동 때는 반대 경고문을 발표했으나 조선총독부의 중추원 참의 제안을 끝내 거부했다.

가난으로 박영효의 식객이 되고 그 도움으로 1883년 일본에 관비로 유학했다. 게이오의숙과 도야마 육군하사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귀국, 교관에 임명됐다.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주도의 갑신정변에 참여, 수구파 대신 제거 역할을 맡았고 정변 실패로 일본에 망명하는 등 여러 차례 망명과 귀국을 반복했다. 갑신정변 연좌로 노비가 된 조선의 본처와 헤어지고 일본 망명 중 1886년 일본 여성과 결혼, 5남 4녀를 두었다.

양복 한 벌을 평생 입었고 신발 한 켤레로 30년을 신을 정도로 검소했다. 관찰사 시절 초상집 상여를 직접 메고, 식사대접 받은 농가의 거름을 져주고 관찰사 관사를 고아원으로 개조, 세인을 놀라게 했다. 자녀 결혼식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 광복 후 "우연히도 하늘의 보살핌으로 독립을 하였으므로 감사히 여겨야 하며,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말자"고 했다. 해방 뒤 강원도지사 고문, 임시 강원도지사를 맡았고 1946년 오늘 영욕의 삶을 마쳤고 친일파란 꼬리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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