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 공동체가 답이다]②거대 자본에 도전하는 협동조합

'쉐비시' 돼지 뛰어난 품종 보존…풍력·태양열 에너지로 자급자족

슈베비시 할 생산자 협동조합 이사인 크리스티안 뷜러 씨가 돼지 농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돼지 50마리가 생활하는 농장 크기가 2만5천㎡에 달한다. 슈베비시 할 생산자 협동조합 이사인 크리스티안 뷜러 씨가 돼지 농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돼지 50마리가 생활하는 농장 크기가 2만5천㎡에 달한다.
영국 풍력'태양열 발전 협동조합인 'WESET' 조합원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풍력 터빈은 이곳에 총 5개가 있다.작은 사진은 취재진을 안내한 크리스 씨. 영국 풍력'태양열 발전 협동조합인 'WESET' 조합원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풍력 터빈은 이곳에 총 5개가 있다.작은 사진은 취재진을 안내한 크리스 씨.

시장 체제의 문제는 거대 자본을 소수가 독점하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최근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합원 8명으로 시작한 독일의 돼지고기 생산자 협동조합, 동네 주민들이 세운 영국의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등은 조합원들이 이익을 골고루 나눠 가지며 마을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독일, 소규모 돼지 농가 뭉쳐 만든 협동조합

지난달 찾은 독일 남부 슈베비시 할(Schwabisch Hall) 지역의 볼페어트 하우젠 마을. 프랑크프루트에서 서남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지역이다. 마을 주민이 1천200여 명에 불과한 이 마을은 슈베비시 할에서 내로라하는 '부촌'이다. 이 동네는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슈베비시 할 생산자 협동조합'(이하 슈베베시 할 조합) 때문에 한국 취재진이 찾을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슈베비시 할 조합의 역사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은 대량 생산에 적합한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 '쉐비시'라는 전통 품종의 돼지를 다른 품종과 교배시키면서 쉐비시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1982년 지역 신문에는 '쉐비시 품질이 낮아졌고, 토종 돼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자극을 받은 루돌프 뷜러(62) 씨는 뜻이 맞는 농민 7명과 함께 쉐비시 품종을 보존해 양질의 돼지고기를 생산하자는 취지에서 1986년 협동조합을 세웠다. 뷜러 씨의 아들이자 조합 이사인 크리스티안 뷜러(34) 씨는 "당시 남아있던 돼지를 대상으로 품종 검사를 했고, 쉐비시 품종을 찾아냈다. 독일 남부에는 소규모 농가가, 북부에는 대규모 농가가 많은데 조합을 설립한 뒤 북부의 대형 농가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8명으로 출발한 조합은 현재 조합원이 1천4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고, 독일 전역 350곳에 판매처가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억2천만유로(약 1천400억원)에 달한다. 슈베비시 할 조합은 복잡한 유통 과정을 단순화시켜 농민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늘렸다. 독일에서는 돼지고기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려면 보통 7단계 유통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이 조합은 마을 안에서 도축, 생산, 소시지 가공, 판매까지 하며 물류비를 아꼈고, 마을에 일자리도 창출했다. 뷜러 씨는 "지역 각 농가의 규모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조합원들은 일반 시장에 돼지고기를 납품할 때보다 30% 이상 높은 수익을 얻고 있다. 5성급 이상 레스토랑에 쉐비시 고기를 납품하고 있으며, 루프트한자 일등석 기내식에도 우리 고기를 공급한다"며 품질 인증서를 보여줬다.

뷜러 씨의 설명을 들으며 바로 옆에 있는 돼지 농장으로 이동했다. 쉐비시 돼지들은 갑갑한 우리를 벗어나 넓은 초원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2만5천㎡에 돼지 50마리가 살고 있다. 그는 "돼지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30%가 종자, 30%가 사육 환경, 나머지는 도축 기술"이라며 "돼지 귀에 부모 돼지 정보, 생년월일 등을 담은 칩을 달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고 덧붙였다.

슈베비시 할 조합의 목표는 단순히 '돈 버는 농업'이 아니다. 농민들의 연대로 재래식 농업의 한계를 극복해 그 소득을 나눠 가지고, 이 성공 비결을 다른 협동조합에 전수하는 것이 목표다. 뷜러 씨는 "인도 케릴라주 허브 농장에서 우리 조합을 벤치마킹했고, 세르비아 파프리카 경작 농민들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며 뿌듯해했다.

◆영국, 재생에너지 파는 지역 주민들

영국 런던 근교 스윈던(Swindon)의 웨스트밀 지역. 현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풍력 발전기였다. 이 지역에는 지역 주민들이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만든 소비자 협동조합이 있다. 바로 풍력'태양열 발전 협동조합인 'WESET' (Westmill Sustainable Energy Trust)이다. 영국은 1957년 윈드스케일 핵발전소 사고가 터진 이후 핵에너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고, 지역 공동체가 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풍력과 태양열 협동조합 연합체인 WESET은 지역 공동체가 지분을 100% 소유한 재생에너지 발전소다. 풍력 협동조합은 매년 4천 가구, 태양열 협동조합은 1천400가구에 사용할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날 취재진을 안내한 사람은 WESET의 조합원인 60대 크리스 씨. "WESET은 2005년 지역 농민인 아담 트와인(Adam Twine) 씨의 아이디어로 시작됐어요. 트와인은 덴마크에서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20%가 지역 공동체 소유라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고, 이 지역 넓은 농장을 활용해 풍력, 태양열 발전소를 만들자고 지역 주민들에게 제안했어요." 당시 25마일(40㎞) 안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조합에 출자할 자격을 먼저 줬고, 약 2천5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해 풍력 터빈 5개를 샀다. 크리스 씨의 가족들도 모두 WESET의 조합원이다.

협동조합 설립 초창기에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많았다. 그는 "태양열 패널이 공간을 많이 차지해 농작물을 심을 수도 없고, 동물들이 전선을 씹을 우려가 있어 양이나 염소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생 꽃을 심고, 벌 농장을 운영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 합의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WESET의 사업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풍력 터빈에는 '사우스필드 주니어 스쿨'(Southfield Junior School)이라는 학교 로고가 붙어 있었다. 이 로고의 의미를 묻자 크리스 씨는 "WESET에서는 각 초'중학교 학생들을 발전소에 불러 에너지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가르쳐 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저 로고도 근처 초등학교 아이들이 견학 와서 붙이고 간 것"이라고 웃었다.

협동조합은 '절대선'이 아니다. 협동조합의 최종 목표는 조합원들, 공동체의 이익이다. 크리스 씨는 WESET이 재생에너지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영국의 에너지 회사 2곳에 판매된다. 풍력 협동조합에서만 매년 100만파운드(한화 약 17억원) 정도의 수익이 나며, 매년 조합원들에게 수익금이 분배된다. 크리스 씨는 "조합원들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며, 동시에 수익도 창출한다는 점을 뿌듯하게 생각한다. 협동조합의 최종 목표는 공동체의 이익"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에서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관련기사

AD

최신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