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역사는 되풀이된다는데…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뒷사람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임종국(1929~1989) 작가가 일제강점기를 집중 연구한 글도 같은 까닭이었다.

그는 '일본군의 조선 침략사'에서 일본의 침략과 패전을 운명적인 것으로 봤다. 그는 "만주사변(일본이 중국 침략을 위해 1931년에 일으킨 류타오거우 사건)이 중일 전쟁(1937년)에의 현관이었듯이, 중일 전쟁은 태평양 전쟁(1941년)에의 현관이었다. 이것들은 모두가 더 큰 반경을 가지는 동심원(同心圓)의 관계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 동심원들의 외연(外延)은 조선 지배로부터 시작되는 운명적 필연의 원심(圓心) 위에서 출발하였다"고 했다.

일본의 야욕을 원숭이의 어리석음에도 비유했다. "원숭이에게 양파를 주면 껍질을 벗긴다. 그러면 안에서 또 한 켜의 껍질이 나온다. 이 껍질들을 연속 벗겨 가다 보면 필경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원숭이는 화를 내고 만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동양의 원숭이 일본은 조선 지배라는 하나의 외연을 해결하였다. 하지만 그 바깥에는 반경이 큰 또 하나의 외연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외연들을 연속 허물어가던 끝에 그들은 마침내 무(無)에 직면한다. 히로시마의 비극의 문을 열고 만 것이었다." 침략을 대비 못 한 우리나 패전의 종말을 맞은 일본엔 뼈아픈 역사다.

300년 전 태어나 우리 시각의 역사서인 '동사강목'(東史綱目)을 쓴 안정복(1712~1791)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역사는 '난신(亂臣'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과 적자(賊子'불효불충한 사람)가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춘추(春秋'옛 중국의 역사책)가 이루어진 후 난신과 적자가 두려워하게 된 것은 명의(名義'명분과 의리)가 정해진 까닭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 이유다.

그보다 170년 앞서 세상에 나온 류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1592년) 기록인 '징비록'(懲毖錄)을 쓴 까닭도 같았다. 임란 같은 불행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경(詩經'옛 중국의 경전)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경계하여(懲)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毖)' 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고 했다. 나라에선 이를 잊지 않으려 60년마다 돌아오는 임진(壬辰) 해에는 주갑(周甲) 행사를 가졌다.

그러나 우리 역사 수레바퀴는 좋지 않게 굴렀다. 경계의 글도 소용없었다. 일제 식민 지배와 6'25 남침 전쟁을 피하지 못했다. 임란, 조선 패망, 6'25에선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집권 세력의 부정과 부패, 비리 만연, 무능이다. 이들 눈엔 백성은 없었다. 나라 안위는 뒷전이었다. 임란 때 관(官)과 군(軍)은 도망이 최선이었다. 조정은 패거리 권력 쟁탈 싸움에 바빴다. 수탈과 형벌에 시달린 백성은 되레 관에 불을 질렀다. 침략자의 길을 안내한 백성도 있었다.

조선 패망 역시 자초했다. 조정은 썩었고, 일본은 친일(親日)과 밀정(密偵)을 배양했다. '일본판 이이제이(以夷制夷'적을 이용해 적을 누른다는 옛 중국 전략)'였다. 강제 병합 전 일제 앞잡이는 전국에 촘촘히 박혔다. 광복 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부패한 정권과 미(美) 군정은 친일 잔재 척결보다 되레 이용했다. 반공을 앞세운 '미국판 이이제이'라 부를 만하다. 무능 부패 정부가 자초한 6'25전쟁 중에도 비리, 권력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나라 안팎 사정이 심상찮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본, 중국 움직임이 그렇다. 원전 사고 이후 탈핵(脫核)을 외치던 일본이 핵 원료 만들기와 핵무장을 위한 조치를 속속 실천하고 있다. 비밀리에 통과시킨 한'일 군사협정 처리도 우려스럽다. '혼네'(本音)로 통하는 일본 속내는 끝남이 있는 양파보다 더 알 수 없다. '굴기'(崛起'우뚝 섬) 중국은 서해를 비롯해 우리를 포위하며 군사력을 부쩍 키우고 있다.

그런데 나라 안은 엉망이다. 권력 비리, 부정부패가 잇고 있다. 종북, 이념, 색깔 논쟁은 위험할 수준이다. 남(南)-남(南) 갈등을 부추기는 '북한판 이이제이'를 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국회는 놀고 있다. 국민만 바라보겠다던 정치권의 맹세와 각오는 실종됐다. 조선 개국 200년의 평화 뒤에 터진 임란, 다시 300년 지나 맞은 조선 패망, 6'25 정전이 가져다준 60년의 평화, 그리고 혼란스러움,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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