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강치, 가죽 노린 日 사냥꾼엔 '노다지'

[여기는 독도] 해양환경-강치②

▲ 독도 접안장에 부상을 입은 채 쉬고 있는 물개를 관광객들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 독도 접안장에 부상을 입은 채 쉬고 있는 물개를 관광객들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 강치, 즉 바다사자에 비해 물개는 주둥이가 비교적 짧다. ▲ 강치, 즉 바다사자에 비해 물개는 주둥이가 비교적 짧다.

강치는 독도와 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강치로 말미암아 그 옛날 독도가 확인되었으며 강치로 인해 일본인들이 독도 침탈을 획책하게 되고, 강치 멸종문제를 놓고 국제학회에서 한일논쟁이 불붙었으니 독도의 역사를 강치, 즉 바다사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독도에는 강치 사촌격인 물개 한 마리만이 동도 접안장 옆에서 상처입은 채 엎드려 있다.

강치 서식지로서의 독도는 '조선왕조실록' 성종 편에 등장한다.

성종 편에는 '영안도(永安道·함경도) 관찰사 이극돈이 급히 보고하기를 영흥사람 김자주가 삼봉도에 가보고 그 지형을 그렸다고 하기에 급히 바칩니다.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벌려 섰고…바다 섬 사이에는 인형 같은 것이 별도로 선 것이 30여개나 되는데 의심이 나고 두려워서 곧바로 가보지 못하고 섬 모양만 그려왔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학자들은 여기에서 말하는 '삼봉도'는 지금의 독도이며 '인형 같은 것'은 강치로 추정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실록과 역사서에는 강치에 관한 기록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그러나 귀한 독도 강치는 일본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어 그들을 끌어들이게 되고, 결국 시마네현(島根縣)이 독도 관련 '억지 주장'을 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

일본의 강치잡이꾼 나카이(中井)는 1890년부터 외국 영해에 나가 잠수기 어업에 종사한 기업형 어업가이다. 그는 1891년과 1892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로를 했고, 1893년에는 우리나라 경상도, 전라도 연안에서 해표(海豹)와 전복잡이에 종사했다. 그러다 1903년 독도에서 강치잡이로 이익을 챙긴 그는 대한제국 정부에 어업독점권을 청원하기 위해 일본 관료들을 접촉했다. 이에 시마네현은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만들어 전대미문의 현(縣)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편입하려고 획책한 것이다.(신용하 저, 한국의 독도영유권 연구)

일본 강치 사냥꾼 나카이가 독도 강치잡이에 열을 올린 것은 가죽 때문. 당시 강치가죽은 고급가방을 만들거나 다도(茶道)에서 샘물을 뜨는 바가지로 각광받았다. 강치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방은 파리박람회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강치고기는 기름을 내려 판매했다. 버릴 것 없는 강치 한 마리 값은 황소 열 마리 값과 맞먹었다.

살아있는 노다지인 강치를 나카이가 1904년부터 1913년까지 10년간 '다케시마 어렵회사'를 통해 잡은 것만 해도 1만4천여마리에 이른다. 이후에도 1941년까지 연간 수십에서 수백 마리씩 포획해간 것으로 나타났다.(경북도 바다사자 복원 자료집)

일본인들에 남획된 독도 강치는 다시 1948년 미군이 독도에서 해상 폭격연습을 하면서 대량살상의 피해를 입고 서식지를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4월 독도에 들어갈 때는 200여마리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독도의용수비대원이었던 정원도(80)씨의 증언에 따르면 먹을 것이 떨어지고 육류 섭취가 필요할 때는 가끔 강치를 잡아 먹었다는 것.

"처음 강치를 잡았을 때는 꺼림칙해서 아무도 먹으려고 선뜻 나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홍순칠 대장이 마음이 순한 조상달 대원에게 삶은 고기하고 소주를 한 병 내놓고 권했지요. 먹어도 아무 탈 없자 너도나도 달려들어 먹기 시작했는데 기름기가 많아 욕심스레 먹고는 밤새 설사한 대원도 있었어요. 강치도 어미보다 새끼를 삶아 놓으면 고기가 연하고 아주 맛이 좋더라고요."

독도의용수비대가 주린 가운데 연명을 위해 몇 마리 잡아먹은 강치를 두고 '한국의 홍순칠이 독도강치를 몰살시켰다'고 구소련에서 개최된 자연동물국제회의에 참석한 일본 대표가 회의 석상에서 발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를 두고 우리 학계에서는 일본의 대표적 적반하장 사례로 보고, 독도 영유권 논란 이전에 '독도강치 멸종 책임'을 일본에 물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서도 북쪽 가제바위가 비좁도록 앉아 있었다는 강치들. 지금은 일본 강치라는 명칭을 달고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러나 10년 후면 백과사전에는 독도를 서식지로 한 '독도 강치'가 기록되고, 가제바위에는 강치 울음소리가 요란할 것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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