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바꾼 '안동간고등어'

"제주도 근해서 잡은 통통하고 싱싱한 놈만 엄선"

▲ 안동간고등어 간잽이 이동삼씨가 굵은 천일염으로 간고등어를 염장하는 전통비법을 시연하고 있다. ▲ 안동간고등어 간잽이 이동삼씨가 굵은 천일염으로 간고등어를 염장하는 전통비법을 시연하고 있다.

올해는 안동의 명물, '안동간고등어'가 탄생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바다도 없는 내륙, 안동에서 출발했지만 성과는 놀랍기만 하다. 첫해였던 1999년 3억7천만원에 그쳤던 매출액이 2000년 24억, 2002년 76억, 2004년 167억에 이어 2005년 200억원대에 진입하는 등 해마다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려온 것.

외환위기 경제난국의 잿더미속에서 첫선을 보인 안동간고등어가 어떻게 장수를 누리는 특산품으로 성공했을까.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안동간고등어의 비밀에 대해 알아봤다.

◆안동간고등어의 어제

고등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낸 다음 소금간을 해 숙성시켜 비닐포장하는 안동간고등어 생산 과정은 누구나 손쉽게 흉내낼 수 있다. 하지만 원료 구입부터 시작되는 깐깐한 선별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부분. 오랜 어물 장사꾼이라 해도 어느 바다에서 잡힌 고등어인지에 따라 선도와 육질은 물론이고 가격까지 달라진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흑산도 부근에선 새우 먹은 고등어가 잡히죠. 뱃속에 새우가 들어 있으면 아무리 냉동저장을 잘한다 해도 선도에 문제가 생겨요. 남해 앞바다에서 잡힌 멸치 든 고등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우와 멸치를 잡아먹은 고등어의 내장은 빨리 삭고, 내장이 삭으면서 선도를 속부터 떨어뜨려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형편없다는 게 40년 경력 간잽이 이동삼(65·사진)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제주도 근해에서 잡힌 가장 통통하고 선도가 좋은 것만을 엄선해 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10년간 고집스레 지켜오는 이 선별기준이 '국민생선' 안동간고등어의 여러 인기 비결 중 으뜸이다. "처음엔 명절선물용으로만 만들었는데 백화점에서 가만 놔두지 않더군요. 대중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난리였지요. 처음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어려운 일도 없지 않았다. 원자재인 고등어 값을 제때 결제하지 못해 며칠씩 작업장을 세워야 하는 낭패도 겪었고 대형마트, 홈쇼핑 등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와의 납품계약을 지키기 위해 이웃과 친지들의 '장롱돈'을 급전으로 빌려 쓰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씨는 "단돈 100만원 빚도 다 갚을 때까지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성격이라 몇십억원의 은행융자를 받아야 하는 간고등어 사업 자체는 큰 근심이기도 했다"며 "그 근심이 무차입 경영이라는 또 하나의 기업적 토대를 닦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창업은 우연히 이뤄졌다. IMF 환란으로 기업부도 쓰나미에다 수백만 실업자가 봇물처럼 거리에 쏟아졌던 1998년 겨울, 류영동(47) 안동간고등어 대표는 지인으로부터 짭짤한 간고등어를 선물받았다. "이게 안동간고등어대이(다). 한번 무(먹어) 봐라. 참 맛있데이…."

왕소금이 잔뜩 묻은 간고등어 두손(4마리)을 받은 그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바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싸구려 생선' 고등어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 일약 명절선물 스타로 등극했다.

류씨는 "성공 비결이라면 잊혀졌던 안동간고등어의 감칠맛을 다시 살려낸 마지막 간잽이 이씨를 만난 것과 어려운 시절에 딱 맞는 상품으로 개발한 것뿐"이라며 "고등어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공포장해 고급화하고 위생적으로 유통시킨 것은 나중에 덤으로 얻은 명성"이라고 말했다.

◆안동간고등어의 오늘

이 회사의 운영은 '따로 경영'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생산·유통·판매·운송·홍보가 모두 제각각 독립돼 있다. 간잽이 이동삼씨가 유통과 판매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생산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역발상 아이디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죠. 저는 '정성껏 만들 테니 파는 건 파는 사람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뼈빠지게 일만 했죠. 그래서 100여명의 직원 대부분이 생산직이고 사무직이라고는 남녀 경리직원 2명뿐입니다."

이 따로경영 덕분에 안동간고등어는 홈쇼핑 전문업체 ㈜베스트엠, 백화점 전문업체 ㈜다빈e푸드, 쇼핑몰 전문업체 ㈜인정F&B 등 온·오프라인 유통전문 회사와 운송·홍보전문 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생산계획도 간단하기만 하다. 주문이 늘면 생산을 늘리고 주문이 줄면 생산도 줄인다.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인데도 생산라인만 있고 영업·유통·기획부서는 아예 없다. 고객센터와 홈페이지(godunga.co.kr)도 전문회사가 맡아 따로 관리할 정도로 처음부터 군살이 쏙 빠진 업체다. 이 모든 게 내륙에 위치해 더 많은 물류비를 물고도 바닷가 수산업체와 당당히 가격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이다. 지난 10년 동안 수산 관련 정책자금을 단 한푼도 얻어쓰지 않고 업체를 운영해 온 것도 알고 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안동간고등어의 성공은 '간고등어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안동지역만 해도 17개의 간고등어업체가 더 문을 열었고 경남·북, 부산, 대구, 제주 등 전국을 합치면 모두 60여 곳에 이른다. 간고등어의 경제유발 효과가 수천억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국내 여러 경제연구소에서 발표된 바 있다.

◆안동간고등어의 내일

지난해 말 한국생산성본부가 평가한 안동간고등어의 브랜드 가치는 113억원. 단일 특산품으로는 국내 최고 기록이다. 오상일(62) 안동간고등어협회장은 "간고등어만큼은 수입 생선에 비해 절대 우위에 있다고 자신한다"며 "올해부터는 높은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우리생선·우리바다 지키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동지역 17개 간고등어 업체들이 모여 결성한 이 협회는 올해 공동브랜드 '청어당'을 개발, 품질관리와 함께 새로운 기능성 퓨전상품으로 더욱 다양한 시장을 개척할 복안을 세워두고 있다. 법성포 굴비와 제주도 은갈치, 울릉도 오징어, 대관령 황태, 구룡포 꽁치 등 전국 브랜드 생선과 연합해 전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우리 생선의 우수성을 알리고 '생선 더먹기' 캠페인을 벌여 나갈 예정인 것. 지난해 서해안 태안반도 기름오염 사태 때 회원사 직원 모두가 일손을 놓고 현지로 달려가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던 것처럼 생선을 잡아주는 어민들에게 보답도 하고 매출도 지키겠다는 내심을 엿볼 수 있다.

10년 전 IMF 경제난국의 위기를 창업의 기회로 삼은 안동간고등어는 최근 또 경제난국을 맞았다. 최악의 경기침체로 다들 죽을 지경이라고 난리이지만 안동간고등어 사람들은 거꾸로 '이제야 숨 돌릴 만하다'고 한시름 놓고 있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은행 부채를 줄이고 줄여 온 덕분이다.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또다시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 내느라 새해 벽두부터 분주했다. 문의 054)853-0545.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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