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읍성은?…영조때 축성, 1907년 해체

대구읍성은 1601년 경상감영이 설치된 뒤, 1736년(영조12년) 관찰사 민응수의 건의로 세워졌다. 읍성은 둘레 2천650m, 높이 5.6m, 두께 8.7m 규모로 남문인 '영남문', 북문 '공북문', 동문 '진동문', 서문 '달서문'을 갖추고 있어 명실공히 대구의 담장이었다.

1870년 당시 경상도 관찰사였던 김세호가 병인양요 등으로 열강과의 충돌이 있자 성벽을 더 높게 쌓고 동서남북 4개 문의 누각을 고쳐 '정해루' '주승루' '선은루' '망경루'로 명했다.

하지만 읍성은 1907년 해체됐다. 친일파였던 대구판관 박중양이 '읍성으로 상업활동에 지장이 있다'는 일본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의 허가도 없이 성벽을 허물었던 것. 시민들이 동요할 것을 염려해 한밤 중에 성벽을 허물었고 성돌 하나에 엽전 한 냥씩 받고 일본인에게 판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일부 선교사들이 성돌을 옮겨다 집을 지었고, 선교사 주택뿐만아니라 신명·계성학교, 동산의료원 및 약전골목, 일반 고택 등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북구 칠성동 늪 근처를 메우는데 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료=경상감영400년사, 신명여고90년사, 1907년 박중양이 조정에 낸 성벽해체 보고서 등)

※ 매일신문사는 대구읍성 관련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1907년 당시 읍성이 해체되기 전이나 이후의 읍성을 배경으로 한 사진, 약도, 지도, 엽서 등 독자들께서 소장하신 자료는 대구 역사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료를 갖고 계신 분은 매일신문 사진부(053-251-1755~1777)로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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