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10세 때 도망간 어머니…직장 잃자 사라진 아내

생활고에 도망간 엄마와 아내, 홀로 세 자녀 키웠지만 폐결핵 찾아와
아빠 곁 떠나버린 첫째와 둘째, 함께 사는 지적장애 막내아들 걱정에 막막

김경수(52) 씨가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침대에 누워있다. 폐결핵을 앓은 경수 씨는 더운 여름임에도 수면양말을 신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김경수(52) 씨가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침대에 누워있다. 폐결핵을 앓은 경수 씨는 더운 여름임에도 수면양말을 신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자식 버리고 도망간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찢어질 듯 가난해도 내 새끼는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김경수(52) 씨는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다. 홀로 세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경수 씨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어린 자녀들은 그런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아빠는 눈만 잠시 붙이고 다시 일터로 나가야 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사랑을 주는 게 서툴렀다. 하나둘 아빠 곁을 떠난 자녀들은 이제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경수 씨 곁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아들 김정현(27) 씨뿐.

경수 씨는 "내 부모와 달리 좋은 부모가 돼 주고 싶었는데 내 자식들도 의지할 부모 없이 살아야한다니… 참 잔인한 삶이다"라고 했다.

◆생활고에 도망간 아내… 자식 지키려 막노동 전전했지만 폐결핵 찾아와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아버린 삶의 쓴맛이었다. 경수 씨가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생활고에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다. 아버지는 학교 대신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 오랬다. 사장님의 윽박과 욕설이 난무했던 유리공장은 10살 아이에게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자식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참 미웠다. 1년 뒤 집을 떠나 무작정 도망간 서울. 역 앞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아저씨에게 붙어 홀로서는 법을 배웠다.

1990년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아내를 만났다. 그때 그토록 동경했던 가족의 온기를 처음 맛봤다.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목욕탕 세신사였던 경수 씨는 어느 날 일터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20대의 이른 나이에 찾아온 당뇨와 고혈압. 몸무게가 급속도로 빠져 더는 목욕탕에서 일할 수 없었다. 따뜻했던 가정에는 냉기가 대신했다. 아내는 막내아들을 낳고 집을 나갔다.

도망간 엄마가 떠올랐다. 이를 꽉 깨물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식들을 지켜야 했다. 경수 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막노동을 전전했다.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15년을 죽도록 일만 했다. 잘 살아보려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불청객이 또 찾아왔다.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경수 씨는 10년 전 폐결핵을 두 번이나 앓았다. 왼쪽 폐는 이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막내와 기초생활수급비 90만원으로 버텨온 생활은 10년째. 살기 위해 이리저리 돈을 빌리다 보니 빚만 3천만원이다. 복지관의 도움으로 겨우 얻은 집도 300만원의 집세가 밀려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됐다.

◆세상 떠난 뒤 홀로 남겨질 지적장애 막내아들 생각에 막막

막내아들 정현 씨는 경수 씨의 아픈 손가락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채 태어났지만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깊다. 돈 벌기 바빴던 경수 씨는 세 자녀를 잠깐 여동생 집에 맡겼지만 정현 씨는 아빠 곁을 떠나지 못했다. 잠시 잃어버렸던 삶의 의지도 정현 씨가 다시 쥐게 했다. 아내가 떠나고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잠시 방황한 경수 씨는 "배고파"라며 울부짖던 어린 정현 씨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정현 씨는 요즘 본인의 방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 대인기피증까지 찾아와 학교 졸업 후 7년 동안 좀처럼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다. 아들을 타일러보지만 저항은 나날이 거세진다. 경수 씨는 오늘도 아들과 함께 먹을 밥을 짓지만 외로이 밥숟갈을 뜬다.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질 아들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밥도 못 챙겨 먹는 정현 씨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모 집에서 지내던 첫째와 둘째는 자연스레 아빠와 멀어져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얼마 전 우연히 소식을 알게 된 둘째에게 부탁해볼까 전화를 들지만 이내 내려놓는다. 아빠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릇이라 여기며.

경수 씨는 "좋은 추억 하나 못 쌓아줬던 첫째, 둘째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 정현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수 씨의 기침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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