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꿈도 포기한 채 부모 돕던 아들, 살릴 수만 있다면…”

죽도록 일만하다 멈춰버린 ‘폐’
찢어질 듯 가난했던 시절, 꿈도 포기한 채 부모 돕던 아들

아버지 이성욱(가명·77) 씨가 폐가 굳어버린 아들 이송건(가명·50) 씨를 바라보고 있다. 성일권 기자sungig@imaeil.com
아버지 이성욱(가명·77) 씨가 폐가 굳어버린 아들 이송건(가명·50) 씨를 바라보고 있다. 성일권 기자sungig@imaeil.com

인적 없는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집. 방문만 한 작은 나무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실내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이성욱(가명·77)씨는 하루 종일 끼니를 챙기지 못한 탓에 라면을 끓였지만 얼마 먹지 못하고 싱크대로 쏟아부었다. 안방에서는 몸져누운 배성희(가명·73) 씨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부부의 금쪽같은 큰 아들 이송건(가명·50) 씨가 굳어버린 폐로 병원에 누워있기 때문이다. 이 씨와 배 씨는 "내가 아파야 하는데 왜 우리 아들이 누워있을까"라며 눈물을 하염없이 훔쳤다.

◆ 생계 급급해 알지 못한 '폐렴'... 결국 굳어버린 폐

송건 씨의 폐가 멈춘 건 지난 4월. 야채 유통업을 했던 그는 올해 초부터 오한과 기침이 잦았다. 당장 생계가 급한 탓에 본인에게 간질성 폐렴이 있다는 걸 알아챌 겨를이 없었다. 그저 감기이겠거니 2개월 동안 감기약을 달고 일만 했다. 지난달 어느 새벽, 송건 씨는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불안정한 호흡으로 쓰러졌다.

병원을 찾았을 땐 송건 씨의 폐는 이미 굳은 상태였다. 이제 인공호흡기와 에크모(몸 밖으로 혈액을 빼낸 뒤 산소를 공급해 다시 몸속에 투입하는 의료장비) 없이는 혼자서 숨을 쉴 수 없다. 목에 튜브를 꽂은 탓에 목소리는 말이 되지 못한 채 공중으로 흩어진다.

기능을 잃은 폐는 모조리 들어낸 뒤 새로운 폐를 이식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개월 동안 폐 이식자는 감감무소식. 특히 코로나19로 공여자 찾기는 더 힘들어졌다. 행여나 폐 이식을 받아도 비용만 자그마치 1억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송건 씨의 부모에겐 감당할 수조차 없는 병원비가 눈앞에 놓여있다.

아버지 이 씨는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아들만 살아날 수 있다면 뭐든 다 해보고 싶다"며 허공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 대물림 된 가난으로 접어야 했던 '변호사' 꿈

법대를 졸업한 송건 씨는 변호사를 꿈꿨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터진 IMF구제금융은 사법고시 대신 생계 전선에 뛰어들게 했다. 보험회사, 대리운전 기사, 택배기사 일을 전전했지만 앞날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키가 작다고 회사 상사에게 맞아 얼굴이 터지거나 택배 차량 대금을 갚지 못해 수천만원의 빚이 쌓였다. 그러다 10년 전 시작한 야채 유통업. 월수입은 겨우 170만원뿐이었지만 착실히 돈을 모으며 빚을 갚아 나갔다.

4남매를 키워야 했던 부모도 '돈'만 보고 달려왔다. 자식들에게 차마 가난을 짊어지게 할 수 없었다. 이 씨는 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폐색증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목욕탕 음료수 판매원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자신의 모습을 자녀들이 창피해할까 꼬박 20년을 평범한 회사원인 척했다. 어머니 배 씨는 막노동을 택했다. 아파트 공사장, 창틀 공장에서 각종 먼지와 니스 냄새를 들이마신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목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은 대물림 됐다. 성인이 된 나머지 자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져 지금은 연락조차 잘 닿지 않는다.

부모 곁에 남은 송건 씨는 "다 잘 될 것"이라며 오히려 부모를 다독이는 속 깊은 아들이자 형, 오빠였다. 어린 시절 동생들 밥과 학업을 챙겼고 알아서 공부까지 착실히 하며 각종 상장까지 휩쓴 부모의 자랑거리였다. 성인이 된 후 일하며 받은 간식은 부모 방문 앞에 고이 놔두고 조용히 자신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희미해져 가는 의식에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면회 온 아버지에게 얼른 집에 가라며 손을 내젓는다.

그런 아들을 보며 이 씨는 "돈을 많이 벌어 우리 아들 변호사 공부 시켰으면 이렇게 됐을까"라며 가난했던 지난 시절을 원망하며 주먹으로 힘껏 자신의 가슴을 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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