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콜중독에 길거리생활 청산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희귀 혈액종양에 희망 잃은 황운호 씨

희귀 혈액 종양 진단에 골수이식 필수, 비용 마련 막막해

황운호(58) 씨가 함암제를 투여하는 카테터를 확인하고 있다. 그는 오는 10월 골수이식을 앞두고 오는 12일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병원에서는 황씨와 완벽히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를 찾았지만 황 씨는 비용마련이 어려워 이식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 이주형 기자.
황운호(58) 씨가 함암제를 투여하는 카테터를 확인하고 있다. 그는 오는 10월 골수이식을 앞두고 오는 12일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병원에서는 황씨와 완벽히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를 찾았지만 황 씨는 비용마련이 어려워 이식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 이주형 기자.

황운호(58) 씨는 정신 못 차리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한때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았지만 빚보증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가족들은 뒤돌아섰고, 홀로 술병을 잡고 거리를 떠돈 세월이 몇 년이었다.

정신을 차려 알콜중독 치료를 받고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싹 틔웠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혈액 종양에 마지막 희망 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는 "아내 말을 들었어야 했고 무슨일이 있었어도 가족을 지켜야 했는데 돌이켜보면 후회만 남는다"고 말했다.

◆ 희귀 혈액 종양 진단, 골수이식 비용마련 못해

황 씨는 지난 1월 모구형질세포양수지상세포종양(BPDCN) 진단을 받았다. 이 질환은 혈액 종양의 일종으로 주로 발진 등 피부병변으로 나타나지만 백혈병 양상을 바로 보이기도 한다. 2008년까지는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을뿐더러 정식 치료제도 지난해에야 나올 정도로 희귀한 질환이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음식을 먹기 어려울 만큼 목이 부어올랐다. 단순히 '감기겠지,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버틴 지 2개월쯤 되던 날이었다. 그가 계속 연락이 안 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지인이 황 씨의 집으로 찾아와 황급히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는 당시 갈비뼈가 다 드러날 만큼 몸이 앙상해진 상태였다.

황 씨는 혈액종양 진단 이후 7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아오고 있지만 골수이식 없이는 차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독한 항암치료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생활고다. 매달 40만 원이 채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금으로는 700만 원에 가까운 골수이식비용을 마련할 엄두도 못 내는 것.

그는 지난달 퇴원하면서 나온 병원비 42만 원을 수급금을 털어 내고 난 뒤 4천 원으로 한 달 가량을 살았다. 집 근처 복지관에서 얻은 라면이 유일한 식량이었지만 이마저도 치료 후유증으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굶다시피 했다. 그는 "온몸이 찌릿찌릿하고 피부와 혓바닥까지 다 벗겨져 따갑다" 며 "라면을 끓여도 찬물에 담가 면만 먹었다"고 말했다.

◆ 빚보증 잘못 섰다 가정파탄, 알콜중독에 길거리 생활

황 씨는 25여 년 전 직장동료의 빚보증을 서주고 나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집안사정이 어렵다며 줄기차게 보증을 요구하던 동료는 황 씨의 돈 1천만 원을 도박에 탕진하고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잠적해버렸다. 사실을 뒤늦게 안 황 씨는 홧김에 술에 의지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는 "친구가 도박을 한다는 사실도 몰랐고 보증을 선다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도 잘 몰라 딱한 마음에 아내 몰래 통장을 줬다" 며 "내게는 일언반구 말조차 없이 주위 지인들을 통해 들려오는 그의 소식에 배신감이 솟구쳤다. 적어도 한번이라도 찾아와 사과를 했으면 그렇게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결국 술로 직장도, 가정도 잃었다. IMF를 거치며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아내와는 지난 2003년 위장이혼을 했지만 이후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그 뒤로 그는 6년 동안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술에 의지해 노숙생활을 했다.

황 씨는 2009년 경북 영천의 정신병원에 입소해 알콜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 기를 썼다. 그러나 예고 없이 찾아온 혈액 종양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황 씨는 "나만 생각해주던 아내를 잃었고 가족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후회가 뼈에 사무칠때 이미 나이 50이 넘어있었다" 며 "다시 일어나서 가족들의 용서를 빌고싶었는데 너무 염치가 없었는지 하늘이 벌을 주는 것 같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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