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인을 알 수 없는 지적장애에 실명위기 처한 5살 예나

"이 아이가 편안하게 쌔근쌔근 잠드는 모습 보는 것이 꿈이에요"
"전 남편의 난폭 행동 탓인 것만 같아 마음아파"

임수연(가명·36) 씨가 예나(가명·5)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지만 주의 산만한 예나는 곧장 싫증을 낸다. 이미 실명에 가까울 만큼 시력이 낮지만 예나에게는 안경을 쓰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이주형 기자
임수연(가명·36) 씨가 예나(가명·5)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지만 주의 산만한 예나는 곧장 싫증을 낸다. 이미 실명에 가까울 만큼 시력이 낮지만 예나에게는 안경을 쓰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이주형 기자

임수연(가명·36)씨는 아직도 신경질적으로 잠들기를 거부하는 딸 예나(가명·5)를 보면 눈물이 흘러나온다. 아이 울음소리를 유독 싫어했던 전 남편의 협박에 못이겨 아이 입에 수건을 물리고 이불을 뒤집어 씌워 억지로 재운 것이 수십차례다.

이로 인한 극도의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예나는 현재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 증세에다 시력조차 매우 낮아 실명위기에 있다. 24시간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예나 옆에 붙여 있을 여유가 없다.

◆극도로 낮은 시력에 지적장애 증세까지 동반

예나는 이미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지만 아직 배변을 가리지 못하고 말도 어눌하다. 신체·정신적으로 지나치게 느린 발달 탓에 3살 어린 동생들과 같이 어린이집을 다녀도 곧잘 무시를 당한다.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 탓에 병원에 가도 진료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다. 지난 2월에는 병원에서 실명에 가까울 만큼 시력이 낮다는 판정을 받았다.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임 씨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임 씨는 "예나가 모든 것이 미숙하지만 곧 나아지겠거니 생각했다. 원인도 해결책도 없는 실명 수준의 난시라는 말을 들으니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고 했다.

예나는 현재 대구교육청 지원을 받아 주 3회 사설기관에서 감각통합·언어 치료를 받고 있다. 담당의사는 예나가 지적장애 등급을 받고 통원 치료를 받으라고 거듭 권유하지만 임 씨는 생계비 마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임 씨가 일을 하러 나가는 사이 구청 아이돌봄센터에 예나를 맡기고 있는데, 장애등급을 받을 경우에는 이마저도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는 "장애등급을 받게 되면 장애아이 돌봄을 신청해야하는데 대기순번이 너무 길다"며 "그 동안 당장 우리 모녀의 생계는 누가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살려고 뛰쳐나왔지만 전 남편보다 더 무서운 현실의 벽

임 씨는 예나의 병이 전 남편의 난폭한 행동에 영향을 받았다고 믿는다. 분노조절장애였던 남편은 조금만 시비가 붙어도 살벌하게 싸움을 걸어댔다. 칼을 들고 다가와 협박을 하는 등 남편의 가혹행위가 점점 더 심해지자 이들 모녀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떨다 5년 전 이혼했다.

임 씨는 이후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는 "월 3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비로는 살수가 없다"며 "주방보조 일을 하면서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와 식비를 덜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 4~5시간 근로였지만 이마저도 딸을 돌보느라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그는 이웃들의 소개로 단기간 아이들을 맡아주는 부업도 하고 있지만 아이를 맡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 형편에 크게 보탬은 되지않는다.

이 상황에 임 씨마저 중대뇌동맥폐색 증세를 앓고 있다. 지난 2016년 첫 진단을 받은 이후 지난 1월 MRI 검사를 통해 멈췄던 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임 씨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이명증상과 함께, 헛것이 보이고, 두통도 심하다"면서 "의사는 계속 뇌혈관이 막히면 모야모야병에 걸릴 수 있다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병보다는 가뜩이나 예민한 예나가 다 성장할 때까지 옆에 있지 못할까봐 덜컥 무서움이 앞선다고 했다.

임 씨는 "어느날 표현이 서툰 예나가 '엄마. 엄마가 옆에 있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사랑해요' 라고 애교를 부리는데 '내가 이 말을 들으려고 지금껏 고생하며 살아왔구나'는 생각이 들더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예나를 지키겠다"고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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