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된 이도현(가명·30) 씨가 휠체어를 밀어 아버지 이정구(가명·56) 씨 곁으로 갔다. 교통사고에 처한 뒤 심각한 뇌손상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의 눈은 초점 없이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 씨는 오랜 병상 생활로 발 뒤꿈치에 욕창이 생겼다. 목에 삽입된 관으로는 수시로 가래를 뽑아내야 한다.
◆출근길 음주운전자가 낳은 비극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6시 대구 남구 앞산순환도로 충혼탑 부근. 건물 철거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이정구 씨가 자신의 1t 트럭을 운전해 출근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비극이 한 순간에 찾아왔다. 이 씨 차를 뒤따르던 음주운전 차량이 급히 차로를 변경하다 이 씨의 차량 후미를 추돌했다. 균형을 잃은 이 씨의 차량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넘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차량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124%로 면허취소 수치였다.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는 가해차량이 갈지(之) 자로 차선을 넘나드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형편없이 부서진 차량만큼 이 씨 몸도 만신창이가 됐다. 이 씨는 갈비뼈 대부분이 골절되는 등 몸에 성한 곳이 없었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특히 뇌손상이 심해 지난달까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했다. 최근 상태가 다소 안정된 덕에 일반 병실로 옮겼지만 이 씨는 여전히 의식이 없고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아들 도현 씨는 아버지의 골절상에 대한 수술치료를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가해자의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비를 받을 수는 있으나 매달 수백만원 씩 드는 간병비는 이 씨가 우선 부담해야 한다. 약관상 보험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자료도 200만원이 전부다.
한동안 용서를 구하던 가해자도 구속영장 심사를 앞두고 잠적해버렸다. 이 탓에 이 씨 가족이 가해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려 해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가 휴대폰을 꺼놓은 상태로 위치추적도 되지 않는다. 가족을 통해 설득하고 있지만 작은 아파트에서 누나와 함께 사는 가해자가 보상 능력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 뇌졸중 후유증과 싸우는 아들
아버지 곁을 지키는 도현 씨는 정작 자신의 몸도 성치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부자는 19년 전 도현 씨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한 후 서로에게 기대어 꿋꿋이 살아왔다. 더구나 도현 씨는 과거 하프 마라톤을 뛸 정도로 건강에 자신 있던 청년이었다.
그러던 도현 씨가 재작년 6월 퇴근길 갑자기 닥친 뇌졸중에 쓰러졌다. 당시 전신이 마비되는 위중한 상태에 처했다가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쳐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오른쪽 팔다리를 쓰지 못해 휠체어 신세다.
부자가 함께 살던 집의 얼마 안 되던 전세보증금도 도현 씨의 수술비와 재활치료비 등에 모두 써버리고 없는 상황이다. 이들 가족은 지난해 9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됐으나 수급비만으로는 매일 불어나는 간병비와 재활치료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도현 씨는 간병인도 두지 않은 채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다.
도현 씨는 아버지가 자식의 재활치료비를 벌고자 무리하게 일한 탓에 사고에 처한 것만 같아 미안함이 크다. 도현 씨는 "앞서 아버지는 내 재활치료비를 벌겠다며 하루에도 여러 철거 현장에 다니며 무리하게 일을 하셨다. 그 와중에도 매일 내가 있는 병원에 찾아와 간식거리를 전해주곤 했다"고 말했다.
연이은 불행은 도현 씨의 정신까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현 씨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기억력 감퇴 증상이 생겼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신 뒤로는 우울증까지 와 약물과 상담치료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도현 씨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뿐이다. "아버지가 깨어나서 저한테 '괜찮다'는 말 한마디만 하셨으면 좋겠어요." 도현 씨가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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