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사기에 전 재산 날린 이정순 씨

"시간 되돌릴 수 있다면…" 눈물로 밤 지새워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비롯해 전 재산을 사기로 날린 이정순(가명'47) 씨가 대화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비롯해 전 재산을 사기로 날린 이정순(가명'47) 씨가 대화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33㎡(10평)도 채 되지 않는 집에서 만난 이정순(가명'47) 씨는 멍하니 앉아 바닥만 바라봤다. 아직까지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하염없이 눈물만 훔쳤다. 7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사망보험금으로 차린 작은 카페에서 직원으로 만난 무당에게 속아 전 재산을 날렸다고 했다.

이 씨는 차마 아이들에게 사기당한 사실을 말할 수는 없다며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도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아이들은 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어요. 제 실수로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남편 사고로 죽고 사기에 속아 전 재산 잃어

평생을 살림만 하고 살던 이 씨에게 냉혹한 현실이 손을 뻗친 것은 7년 전 남편의 사고가 기점이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2010년 3월 고층빌딩에서 작업 중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이 씨는 "남편이 워낙 크게 다쳐 사고 난 다음 날 바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와 아이들만 남았다는 실감이 됐다. 눈앞이 깜깜했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든든한 우산 같은 존재였던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남은 것은 사망보험금 8천여만원이 전부였다. 고정 수입이 없어진 상황에서 이 씨는 대구 남구 봉덕동에 작은 카페를 차렸다. 이 씨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어 두려웠지만 아이들을 키우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며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곳이 있어 카페를 차렸지만 당시에도 걱정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가게 운영 경험이 전혀 없던 이 씨에게 사업 성공은 요원한 일이었다. 가게 인근은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파리만 날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 씨는 현실 타개를 위해 가게 경험이 있다는 직원을 뽑았지만 오히려 화근이 됐다. 알고 보니 새로 온 직원은 무당을 자처하는 사기꾼이었다.

직원은 가게가 살아나려면 굿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 씨를 꼬드겼다. 굿을 할 때마다 수백만원이 들었고, 직원은 한술 더 떠 죽은 김 씨 남편까지 들먹이며 돈을 뜯었다. 5년이 넘도록 직원 말을 따르며 이 씨는 대구 달서구에 있던 1억5천여만원짜리 집도 팔아치우는 등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씨는 "애들 아빠도 죽은 상황에서 나까지 카페에 매여 있으니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밤늦도록 잠을 못 잤다. 아이들에게 집중하고자 직원을 뽑았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결국 허황된 말에 속아 넘어간 내 잘못이다. 죽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기 입증 안 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

현재 이 씨네 가족은 매달 10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사기당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입은 이 씨의 식당일과 아들이 야간 퀵배달을 하며 버는 돈이 전부다. 이 씨는 "경찰에 찾아가니 증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무당이 가명을 쓴 데다 돈도 전부 현금으로 전달해 입증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며 "아들이 돈을 벌겠다며 대학도 가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도 최대한 빨리 돈을 벌겠다고 한다. 엄마로서 미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건강도 걱정거리다. 이 씨는 당뇨에 시달리고 있고 아들은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나 허리가 좋지 않지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씨는 "당뇨도 방치하고 있고 아들도 척추측만증이라는 진단만 받아둔 채 아무 치료도 못하고 매일 일한다. 조금만 여유가 생긴다면 아들에게 당장 치료를 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매일 밤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혼잣말로 밤을 지새운다며 눈물을 훔쳤다. 사기를 당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사정을 모르는 아이들이 용돈을 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주지 못할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에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굳게 마음먹고 살아볼 텐데 허황한 바람일 뿐이네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관련기사

AD

사회기사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1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