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팔십 평생 가장으로 산 이정숙 할머니

"파킨슨병 남편과 장애 딸…어린 두 손녀 보면 먹먹"

팔십 평생 가족을 돌보며 산 이정숙(가명) 할머니가 어린 손녀, 아픈 남편 걱정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팔십 평생 가족을 돌보며 산 이정숙(가명) 할머니가 어린 손녀, 아픈 남편 걱정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이정숙(가명'81) 할머니는 한평생 집안 식구들의 가장으로 살았다. 하나뿐인 아들은 15년 전 이혼하면서 걸음마도 떼지 못한 두 딸을 맡기고 떠났다. 여기에 십수 년째 정신장애를 앓아 온종일 방에서 지내는 딸을 돌보는 일도 할머니의 몫이다. 생활이 어려워도 희망을 잃은 적이 없었던 할머니는 최근 눈물이 많아졌다. 얼마 전 남편마저 파킨슨병으로 쓰러지면서 할머니 혼자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손녀를 데리러 돌아올 때까지 저나 남편이나 끄떡없을 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그런 자신이 없어졌어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에 잠도 오지 않아요."

◆어려운 형편에 무너진 가정

할머니 부부에게 아들과 딸은 세상에서 가장 큰 자랑이었다. 부부는 행상, 일용직 노동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바쁜 생활에 남들처럼 신경을 써주지 못했어도 남매는 부모에게 걱정 한 번 끼친 적 없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옷장사로 성공해 집안에 큰 보탬을 줘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딸 역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릴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행복했던 가정이 아들의 결혼 후 서서히 무너졌다. 이른 나이에 가정을 꾸린 아들은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며느리는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했고,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집을 나갔다. 둘째 딸을 낳은 지 3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들은 두 딸을 할머니에게 맡기면서 "기반만 마련하면 다시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아이들 엄마는 집을 나가고 나서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어요. 아들도 처음 몇 년간은 명절에 딸들을 보러 왔지만 지금은 전화번호도 몰라요. 아들 친구들을 통해 전국을 떠돌며 살고 있다는 것만 대강 알고 있어요."

가족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딸은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 일로 심한 우울증이 왔고, 몇 년 후에는 정신장애 판정을 받았다. 딸은 지금까지 외부와 완전히 단절한 채 할머니 집 작은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저의 신세를 지고 사는 형편이지만 아들딸을 원망하지 않아요. 어린 시절 일이 바빠 관심을 주지 못했던 죗값처럼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 재혼에 더 어려워진 형편

할머니의 일평생 가장 큰 걱정은 아들이 맡기고 떠난 어린 손녀들이다. 부부는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고 친척, 지인에게 생활비를 빌려야 하는 형편에도 손녀들을 열심히 돌봤다. 언젠가 돌아올 아들에게 떳떳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초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가 믿기지 않는 말을 건넸다. 더 이상 한부모가정 대상자에 해당되지 않아 그동안 지원받았던 급식비, 보충수업비 등을 모두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버지와 떨어져 살아도 가족관계등록부상 아들이 양육자로 돼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아들이 재혼하면서 혼인신고를 해 손녀들에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어머니가 생겼어요."

얼마 전 할아버지가 파킨슨병으로 몸져누우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부부가 노점을 하면 용돈 벌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할아버지 병간호에 그것마저 어려워진 것이다.

현재 할머니 가정의 수입은 구청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받는 돈과 기초연금 등 60여만원이 전부. 남편 치료비, 손녀 학비, 각종 공과금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10년 넘게 연락 한 번 한 적 없지만 아들의 소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 차상위 대상자 등 법적으로 도움을 받을 방법도 없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 때문인지 일찍 철이 든 손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착한 손녀들이 지금까지 밝게 잘 자라줘 고마워요. 얘들이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 제가 아프지 않고 잘 버티는 게 가장 큰 소원이에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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